지금은 휴식과 기쁨의 시간, 팡도르를 구워요
삶과 죽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의 팡도르>(안나마리아 고치 글,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정원정, 박서영 옮김, 오후의소묘)라는 그림책이다.
이 책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사신이 등장한다. 죽음이 자신을 잊었다며 한탄하던 할머니는 여느 해처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빵에 넣을 달콤한 소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그때 별안간 사신이 나타나고 죽음을 기다렸던 할머니는 빵을 완성할 때까지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청한다.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던 사신이건만 할머니가 입속으로 밀어 넣은 주걱에 묻은 소를 맛본 뒤 부드럽고 따스한 생(生)의 감각에 표정이 누그러진다. 그 틈을 타 할머니는 사신을 집에서 내쫓는다.
다음날 할머니를 찾은 사신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할머니의 환대와 설탕 구름이 뒤덮인 빵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누가가 아직이라는 할머니의 말에 사신은 또 하루의 말미를 남긴다. 이튿날 할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사신은 누가를 맛볼 생각에 생기가 감돌고, 할머니 집에 도착해서는 검은 망토를 벗고 색색의 숄까지 두른다. 아이들에 둘러싸여 귤껍질을 벗기는 사이 공허했던 사신의 두 눈에 붉은빛이 떠오른다. 아직 팡도르(이탈리아에서 연말연시에 가장 많이 먹는 빵)를 굽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말에 사신은 이번에도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날, 할머니의 오랜 비법이 담긴 금빛 팡도르를 맛본 사신은 차갑던 마음이 따스하게 녹아내리고 만다. 죽음을 수행할 결단력을 상실한 그에게 이번에는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건넨다. “이제 갑시다.”
죽음을 기다렸던 할머니가 막상 사신의 방문을 마주한 순간엔 차일피일 떠남을 미루고 죽음에 속한 사신이 할머니가 주는 디저트를 맛보며 생의 부드럽고 따스한 빛을 실감하는 이야기에는 삶과 죽음이 나란하다는 의미가 담겼다. 누가와 스폰가타, 팡도르에 자신의 비법을 숨겨 아이들에게 전하는 할머니의 존재는 죽음 이후 새롭게 시작되는 삶과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할머니와 아이들의 환대로 생에 매혹되지만, 찰나의 빛을 흡수한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신의 존재는 죽음이 차가운 무의 세계만은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한다. 죽음에도 우리가 모르는 ‘살이’가 깃들어 있을 것만 같다.
매번 다른 방식으로 유쾌하게 읽히는 그림책인데 이번에는 유독 사신에게 마음이 기울었다. 텅 빈 눈에 검은 옷을 입고 임무에 철저했던 그가 할머니의 디저트를 맛본 뒤 허물어지는 마음에 난처해하는 모습이 너무도 인간적이어서다. 연말을 보내며 내면에서 무수한 갈등을 겪은 내가 그림책 속 사신 위로 포개어졌다.
계획해 두었던 가족 여행을 다녀왔고, 연이은 크리스마스로 양가 부모님과의 식사 모임까지 치렀다. 그러는 동안 해야 할 일 따위 모두 내려놓고 가족들과 맘 편히 쉬고 싶은 바람과 읽고 쓰는 루틴을 지키고 싶은 바람 사이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 아름다운 걸 보고 아이와 살을 비비며 실없이 웃는 시간이 늘수록 한없이 풀어져 놀고 싶은 쪽으로 기울었다. 철저하게 내 일을 해내고 싶으면서도 할머니가 입에 넣어주는 주걱처럼 느슨한 생활의 달콤함에 젖어 마음의 모서리가 허물어졌다. 그러면서도 영영 책상 앞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했으니, 사신의 심정이 딱 내 것 같았다.
내적 갈등으로 갈팡질팡하면서 맛있는 누가를 위한 비법은 오직 기다림뿐이라는 그림책 속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일이든 관계든, 사랑이든 공부든,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해야 하는 인생, 그런 인생을 맛있게 살기 위한 비법도 기다림일 것이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적당한 때가 오길, 무르익길, 다다르길, 마침내 완성되길 기다리고 또 기다리기. 인생이 지치기 쉬운 긴 기다림이라면 적당한 휴식과 단비 같은 축하는 필수다.
마지막 연말 모임이 하나 더 남았다. ‘글친구들(글쓰기 모임)’과의 송년 모임으로 이번엔 우리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다. 여행과 가족 모임을 마치고 글친구들과의 송년 모임을 앞두었을 때, 책상으로 급히 돌아가는 대신 친구들에게 내어 줄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다. 지금은 휴식과 축하의 시간이니까. 오래 기다리려면 때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휴식과 기쁨도 채워야 한다. 한 해를 살아 여기까지 왔으니 그 또한 축하할 일. 함께 버티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이렇게 살아낸 것으로 충분하다고 격려와 위로를 나누고 싶다. 그것이 새해를 살아갈 힘과 용기가 될 것이다. 삶과 죽음이 함께이듯 끝과 시작도 함께니까.
약속 시간이 되자 친구들이 하나, 둘 집으로 모여들었다.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 웃고 떠들었다. 먹고 마시다 준비해 온 선물을 교환했다. 한 해 동안 각자가 기울인 노력을 잘 알아 축하와 응원의 말이 식탁 위로 흘러넘쳤다. 어떤 찰나엔 그림책 속 사신의 눈처럼 내 눈에도 붉은빛이 떠올랐을 것이다. 서로를 들어주는 사람들, 곁과 곁을 연결하는 이들과 함께라 감사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몸인 끝과 시작을 동시에 맞느라 연말의 우리는 분주하다. 불안과 설렘, 두려움과 기쁨, 후회와 기대, 낙담과 희망 사이를 오간다. 삶이란 그렇게 오가는 일, 넘나드는 일에 능숙해지는 과정 같다. 극과 극이 그리 멀지 않음을 배워간다.
연말의 시끌벅적한 모임을 모두 끝내고 마지막 의식처럼 팡도르를 구웠다. 기다림을 연습하는 데엔 빵 만들기가 제격이라서.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며 잘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에 만든 반죽이 제대로 부풀지 않아 다음날 아침까지 발효를 기다렸다. 기다린 덕분에 충분히 부풀어 갈색빛을 뽐내는 팡도르를 만났다. 아침잠에서 깬 딸아이가 환호하며 팡도르 위로 설탕 구름을 얹어주었다.
삶과 죽음이 함께이듯 시작과 끝도 동시다. 한 해가 저무는 아쉬움에만 기울지 말자. 다시 시작할 산뜻한 기회가 온다는 걸 기억하자. 한 해를 살아낸 자신을 축하하며 자책과 후회에 기쁨과 설렘을 섞자. 여기까지 버틴 것으로 충분하다고 어깨를 두드리며 또다시 삶으로 나설 용기를 북돋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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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닫고 쓰는 인생 레시피>를 읽어주시는 작가님, 독자님,
한 해 동안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도 계속 쓰면서
삶의 작은 조각을 이야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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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닫고 쓰는 인생 레시피>는 격주 연재됩니다.
다음 글은 1월 13일에 발행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