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기 타르트 만들자"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월이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시간이 빠르다고 말하는 일을 줄이자고 결심했는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요즘. 그 속도에 별수 없이 불안이 따라옵니다. 달력을 넘기다 다음 주면 입춘이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겨울도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최근 극장에서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대만 출신 감독 에드워드 양의 2000년 개봉작으로, 리마스터링 판이 재개봉되었어요.) 이 영화는 한 가족과 그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탄생과 성장, 연애와 결혼, 이별과 죽음, 세대와 연결, 그 모두를 꿰어 ‘이게 바로 삶이야.’라고 읊조리는 듯 합니다. 영화에는 NJ와 민민, 그들의 아이들인 틴틴과 양양, 그리고 할머니(민민의 엄마)가 등장합니다. 민민의 남동생 아디의 결혼식으로 시작되는 영화에서 길일이라고 택한 그날 공교롭게도 할머니가 쓰러져 의식을 잃습니다. 엄마의 위중한 상태 앞에서 민민은 무기력함과 삶에 대한 회의를 맞닥뜨리게 되고요.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절로 떠납니다. 병석에 계신 장모님과 아내의 부재로 가정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NJ는 회사 일에서도 곤경을 마주합니다. 그야말로 안팎으로 삶의 위기에 처한 셈이지요. 그즈음 그는 우연히 첫사랑과 재회하기도 합니다.
NJ의 딸, 틴틴은 옆집에 이사 온 리리와 친해지고 급기야 리리의 전 남자친구와 연애 비슷한 걸 시작하지요. 어린 양양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어디 한 명 쉬운 삶을 사는 이가 없어요. 각자 저마다의 문제를 끌어안고 고군분투 중이지만 서로의 속사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가족들 사이 속내를 드러내는 대화는 거의 오가지 않습니다. 다만, 누워 계신 할머니에게 속상하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지요. 보고 들을 수 없고 대답조차 없는 할머니에게요. 할머니가 거울처럼 가족들 개개인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의식 잃은 할머니와 엄마의 가출, 아빠의 불륜과 딸의 실연, 그리고 엉뚱한 아들, 거기다 외삼촌 (아디)의 사업 실패와 자살 소동까지, 그야말로 요란하고 정신없는 사건(심지어 살인 사건도 등장합니다!)의 연속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 영화는 내내 잔잔하고 평온한 온도를 유지합니다. 감독이 인물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며 마주하는 일상의 풍경을 긴 호흡으로 응시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응시하는 카메라에 담긴 순간, 즉 일상의 단면은 인물의 내면과 사건의 복잡성과 달리 단순하고 고요합니다.
그 단면은 뜻밖에도 퍽 아름답습니다. 결혼식 후 기념 촬영이 이루어지는 소란함 뒤로 푸르르게 일렁이는 나무들, 틴틴이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어린 연인의 모습, 번민하는 민민이 창밖으로 바라보는 밤거리의 명멸하는 불빛, 오타(NJ의 사업 상대)가 비둘기와 노니는 장면, 건널목 앞에 나란히 선 틴틴과 패티(리리의 전 남자친구), 그리고 NJ와 셰리(NJ의 옛 연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양양의 모습…. 그 때문일까요, 어려움에 부닥쳐 각자 외로운 시간을 통과하는 인물들을 누군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게 되어요. 한 명 한 명을 보살피고 지켜주는 시선이 있다고요. 할머니가 모든 곳에서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계신 걸까요. 감독인 에드워드 양이 할머니처럼 따스한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을 카메라에 담은 건 아닐까요.
우리의 의지나 속마음과 상관없이 무심히 흐르는 일상이 ‘할머니의 시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없이 보듬어주고 쓰다듬어주는 할머니의 손길처럼, 일상이 인생의 보호막이 되어준다고요. 때로는 일상이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괴로운 일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새 힘겨웠던 일도 끝이 나고요. 일상이라는 시간이 흘러 감정이 변하고, 관계가 달라지고, 성장하고 헤어지고, 죽음에 닿지만, 역설적으로 시간이 흘러 삶은 지속됩니다. 반복되는 매일, 지루하고 똑같아 하찮게 여겨지는 일상이 우리를 날마다 살리고 살게 합니다.
감독은 온갖 소동과 사건을 통과하는 인물들을 조명하면서도 일상에 깃든 아름다운 장면을 슬쩍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우리 곁에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고 알려주지요. 일상은 삶의 틈새에 아름다움이라는 완충재를 두어 우리를 감싸준다고요.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구름과 나무가 위로를 건네고,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무척이나 향긋합니다. 건널목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며 한낮의 햇볕을 받는 순간은 얼마나 따스한가요. 길을 걷다 우연히 듣는 작은 새의 지저귐, 어둠이 내릴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 희고 고운 눈송이와의 만남은 마법 같기도 하고요. 시리도록 차가운 허공으로 희부연 입김이 번지고, 하늘에 별빛이 돋아나는 겨울밤엔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감각하기도 하지요. 영화에서 인물들을 아우르는 할머니의 시선 같은 일상이 우리 곁에도 있습니다. 내게 그런 시선을 보내주는 이가 존재하고, 우리도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주려 애틋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절로 떠났다 돌아온 민민의 대사입니다.
“사는 게 별로 복잡하지 않은 것 같아. 전엔 왜 그렇게 보였을까?”
생각이 많은 편인 저는 종종 사는 걸 복잡하게 대합니다. 생각이 앞서 일이 닥치기 전에 걱정을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해가 바뀌고 한 살을 더 먹으니 삶의 무게가 더해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것도 생각이 앞선 때문이겠지요. 하루는 퇴근한 남편이 회사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다음 달 조직개편이 이루어진다고 한숨을 내쉬었어요. 딸아이는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도 먼데 말이지요. 버티며 살아온 날이 꽤 쌓였는데 살아갈 날이 여전히 많다는데 겁이 났어요. 생각이 먼저 불어난 날엔 눈앞이 깜깜해지고는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면 일상이 저를 감싸고 보호해주고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말지요.
그런 아침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것 같으면, 넌 무얼 할 거니?”
“그럼 딸기 따러 가는 거야.”
“우리 딸기 따러 가자.”
61쪽, <딸기 따러 가자> 정은귀, 마음산책
모호크족(mohawk) 인디언 할머니의 말인데요, 이 말을 인용하며 정은귀 교수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할머니는 뭔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낙심하고 주저앉지 않고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양동이 하나를 챙긴다고 해요. 다음 날 새벽 식구들을 깨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요. “딸기 따러 가자.” 어려운 시절일수록,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벌떡 일어나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요. 무엇이든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구원이라고요.
우리에겐 딸기 따기 같은 일상이 있습니다. 딸기를 따듯 세수하고 밥을 먹고, 오늘 주어진 일을 하고 나 자신과 곁에 있는 존재를 보살피는 일상이요. 어려울수록,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일상을 사는 일, 무엇이든 ‘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일상이라는 보호막을 단단히 챙겨야겠지요. 그 안에서 각자의 딸기를 따다 보면 영화에서처럼 뜻밖의 아름다움을 만날 테고요. 여러분의 딸기는 무엇일까요?
그러고 보니 살아보지도 않고 새해도 여느 날과 똑같겠거니 지레짐작하며 걱정을 앞세웠네요. 새해의 일상은 이전과 같으면서도 날마다 미세하게 다르고 새로울 텐데 말이지요. <하나 그리고 둘> 영화에서 어린 양양이 우린 반쪽짜리 진실밖에 보지 못한다고 말해요. 우리가 앞을 볼 때 뒤는 볼 수 없으니까요. 저는 걱정과 두려움만 보고 그 뒤에 놓인 변화나 설렘은 보지 못했던가 봐요. 눈앞에 보이는 반쪽이 전부라고 여기지 말고 또 다른 반쪽이 있음을 챙기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는 딸기 타르트를 만들 거예요. 딸아이에게 이렇게 외칠 거예요.
“우리 딸기 타르트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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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닫고 쓰는 인생 레시피>는 격주 연재됩니다.
다음 글은 2월 10일에 발행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