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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May 18. 2020

마음의 진공상태를 좋아하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을까.

이렇게 저렇게 나를 알아보려는 시도들도 해봤고 몇 가지 방법들을 제시까지 했는데 정작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때그때 일어나는 감정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트라우마는 무엇인지, 싫어하는 건 무엇인지 등 잘 알고 있을까? 단순히 보이는 취향이 아닌 정말 나의 속마음은 어떤 지 궁금했다. 그래서 근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몇 가지 주제를 가지고 솔직하게 써보려고 한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행복을 아주 잘 느끼지만 그만큼 불행을 잘 느끼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잘 느끼는 편이고 행복이 마음속으로 들어차면 그 충만함에 사실 잘 압도되는 편이다. 기본적인 성향이 감정이 잔잔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이런 경우 대부분 스트레스받을 때 의도적으로 행하는 행위이기도 하다)이나 행복에 대한 나의 태도 등 행복에 관한 나의 생각들을 몇 가지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수없이 많겠지만 머릿속에 바로바로 떠오르는 그 생각들을 적어보겠다.


1. 나는 멍하니 흔들리는 나무의 가장 꼭대기를 보는 걸 아주 좋아한다. 아랫부분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데도 가장 꼭대기는 항상 여유롭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잡념이 없어진다. 그 순간 나는 평온함과 행복을 느낀다.


2. 나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마음의 진공상태가 되면 행복하다. 맥주를 가볍게 마시고 수영하는 걸 좋하는데, 수영보다는 물속에서 심호흡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찾아오는 평온함을 좋아한다. 물론 이 때도 잡념이 사라지면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다.   


3. 나는 집중하는 걸 좋아한다. 마음에 잡음이 생기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고 회피하는 사람이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 때면 감정을 최소화해서 하나의 감정으로 만드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나는 이렇게 무언가에 집중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어쩌면 행복을 아주 잘 느끼지만 불행을 잘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랑하는 그 순간은 누구보다 행복한 편이다.


*1,2,3번을 쓰고 나니 드는 생각. 감정 기복이 있는 나는 기본적으로 감정을 텅 비게 하는 상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거나 행복한 감정이 드는 그 하나의 감정에 몰두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4.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잘하는 편인 것 같다. 물론, 행복했을 때 말이다.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한 편이라 온몸에서 그 기운을 뿜뿜 하는데 이 것을 고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가끔 그래서 내가 이기적인가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행복한 기운을 같이 나누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상대방이 행복한 일이 있을 때 나에게 말해주면 나도 잘 행복해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5. 나는 운동을 하고 가벼워진 몸 상태를 좋아한다. 필라테스를 1시간 하고 나면 몸이 한 10센티 붕 뜨는 기분이 드는 데, 그때 센터를 나서서 집에 걸어갈 때 정말... 땅을 밟지 않고 걷는 기분이 든다. 정말 행복하다.


*이 것도 1,2,3번과 같은 일종의 비움인가? 마음의 빈 상태가 아니라 몸을 가볍게 만드는 상태?


6. 나는 유학시절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루는 논문 준비를 위해서 도서관을 가려고 집을 나섰다. 매일 걷는 그 길을 걷는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정말 신기한 감정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많이 생각해본다. 그래야 다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7. 나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후배들의 고민상담을 해주고 뭔가 답을 찾아갈 때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나 또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나 싶을 때가 많이 있고, 이런 대화 속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8.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과거를 생각하면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말 불행할 때도 많았고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지금 이렇게 책상에 앉아서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면 행복하다.


가끔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이 와도 내색을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불행이 찾아올까 봐 무서워서. 나는 인생은 행복한 순간만 있지도 불행한 순간만 있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너무 쉬운 인생의 진리. 그래서 나는 선택을 했다. 행복하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자고. 불행이 오면 불행하다고 이야기하자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사는 게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런 태도가 보기 싫은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적당한 선을 긋거나 보지 않으면 된다. 중요한 건 나와 가까운 사람들,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은 나의 행복을 보면서 본인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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