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잘 알고 있을까.
나는 사람을 잘 믿는편이다. 애초부터 첫인상에 대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오늘 만나도 말이 통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왜 나한테 잘해주는 지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연락을 주고 받고, 계속해서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 사람은 내 친구가 된다. 얼마나 오랫동안 만나왔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그렇지 않는가. 오래 만난 친구한테도 배신을 당하려고 하면 당하는 것이고 오늘 만났는데 죽을 때까지 만나면 그것은 소중한 인연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렇게 만나다보니 가끔 상처받은 일도 많고 후회되는 일도 많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나에게 상처주는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결국엔 인연을 끊었다. 그렇다고 인연이 단박에 잘라지겠는가. 시간이 지나고 내 마음이 누그러지면 불쑥불쑥 내가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안보고 살기에는 아까운 인연이야 라는 생각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계속 이 인연을 가지고 갔을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여지없이 답은 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누군가를 미워할까?
나는 감정이 좀 무딘편이라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이 나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거나, 의도적으로 놀리려고 하는 말들을 잘 캐치하지 못한다 (물론 모르는 상대방이 나에게 그렇게 하면 같이 싫은 소리를 하거나 놀리겠지만). 또한 장난이겠거니 하는 편이다. 그 마음 속에는 친한 사람인데 라는 내 나름의 관대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계속 쌓여 어느 순간 '저 사람은 왜 자꾸 나에게 이런 감정을 들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 때부터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는 편이다. 물론 상대방이 항상 의도적이진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의 말의 습관이거나 나에게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만약 전자라면 나는 그런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편이다. 그건 미워할 필요도 없고 그냥 나랑 맞지 않은 사람이니까. 후자라면 몇 번은 더 지켜보되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나를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생각이 들면 나 또한 거리를 둔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다. 이런 부분인 걸 알면서도 계속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넘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나는 관계의 한계를 맞닥드린다. 그리고 미움의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대부분 이런 과정을 통해 미움이 자리잡히는 거 같다. *사람을 미워하는 이유야 정말 많겠지만 나는 특히 위와 같은 상황에 의해 많은 경우 미워한다.
한 번 미움이 자리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나는 미움의 감정이 들면 그 마음에 몰입한다. 몇날 며칠 미워하는 대상을 생각하며 꼽씹고 또 꼽씹으며 왜 나를 그렇게 대했을까라는 생각과 여러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시간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미움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싸늘하게 돌아선다. 사실, 상대방은 내가 왜 그러는 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구절절 설명해야할까? 분명히 이쯤 됐다면 상대방도 모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워하면 내 마음만 힘들다라던가, 그런 인간을 미워하는 시간이 아깝다 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 속에 미움의 감정을 쉽게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다. 또한, 미워하지 않고는 분해서 참을 수도 없다. 맞다. 나는 아직 많이 성숙하지 않았다.
미움의 기저에는 길티가 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죄책감을 갖게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라면 그냥 맘껏 미워하면 안될까? 맞지 않는 사람을 끝까지 관계라는 말로 옆에 둬서 내 마음을 다칠 게 아니라 미움을 택하는 게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미워하지만 돌아서면 후회한다거나, 미워서 치를 떨다가도 반가울수도 있다. 미움에 대처하는 나의 모습이 위의 글처럼 하나일 수는 없지만, 이 글을 쓰다보니 나는 좀 더 성숙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