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에서 소유하지 않아도 남는 것들
요가 수업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요일은 유일한 자유시간이다. 200시간의 경우 3주간 수업을 들으므로 3번의 자유시간, 300시간의 경우 4번의 자유시간이 있는 꼴이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간다. 이곳에서 함께 땀 흘리며 감정을 공유하던 친구들과 3, 4번의 외출 후면 언제 만날지 기약이 어렵다. 대부분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일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약간은 아쉬운 시간들이나, 우리는 매 시간 정말 열심히 놀며 보냈다. 첫 자유시간, 식사시간마다 대화를 하며 안면을 튼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친구들이 모여 6명의 멤버가 모였다. 모두 국적도 나이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요가를 한다는 공통점만 가지고 있다. 이게 이 모임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첫 외출날, 우리는 리조트에서 우붓 시내까지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아쉽게도 비가 내렸다 말았다 우중충한 날씨였다. 우붓은 인도가 아주 깔끔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진흙 밟기도 하면서 추적추적한 길을 순례자처럼 걸었다.
우리의 목적은 쇼핑과 맛있는 사식(?)이었다. 다들 육식이 가득한 식단을 하다 일주일간의 채식으로 왜인지 모를 허함을 안고 있었다. 사실 나는 무시하라면 무시할 수 있는 허전함이었지만 몇몇 친구들은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우선은 발리에서 유명한 식당으로 가서 좀 더 발리다움을 만끽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대체로 요가였다. 원래 어떤 요가를 했고, 얼마나 했는지,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가 주였다. 나 역시 내 얘기를 했다. 계속해서 일을 해왔고, 거의 6년 만에 처음으로 공백을 갖게 되었으며 한국에서 주로 하타요가를 해왔기 때문에 빈야사가 좀 어색하기도 하고 자극이 부족하다 등등.
그리고 왜 이 요가원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친구들 대부분 이 요가원이 너무 세련되지 않아서 선택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 부분이 좀 놀라웠다. 이 요가원이 내 기준에서는 꽤 세련된 축에 속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찾아보니 우붓의 다른 요가원은 내 요가원보다 뷰도 훨씬 좋고 훨씬 깔끔한 환경인 곳이 많았다. 뭐든 상대적이리라.
점심을 맛있게 먹고 우리는 우붓아트마켓도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다 보니 도슨트가 필요할 정도로 의미불명의 예술작품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남근의 모양의 병따개나,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그림들부터 테무에서 팔 법한 머리 집게까지. 정말 다양했고,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었다. 발리는 우드카빙(나무조각)이 유명해 나무 조각 작품도 많았다. 정말 거대하고 혼잡한 미술관같았다. 친구들은 사롱을 사거나 집으로 가져갈 기념품들을 잔뜩 샀다. 나는 짐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많이 줄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참 물건을 구경하다 보니 커피가 당겨 급한 대로 가까운 카페에 들어섰다. 카페에 도착해서 또다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한참 앉아 있다 보니 비가 갑자기 억수같이 내려 이젠 돌아다닐 수도 없게 되었다. 억수 같은 비를 보다 보니 왜인지 하나둘씩 속마음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만난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 친구가 자신의 조카가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는 조카가 안타깝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는 사실 나도 내 얼굴이 싫어. 어릴 땐 지금보다 더 미웠어. 지금은 좀 괜찮아. 그런데 아직도 얼굴의 미운 부분이 보여라고 이야기 했다. 억수 같은 빗소리에 나도 모르게 나온 솔직한 마음의 소리였다.
다들 내 말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너는 어리니 더더욱이나 미울 구석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나이 든다고 얼굴이 미워지는 것도 아니라고도 했다. 그렇게 여자 여섯이 각자의 얼굴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에 대해.
카페 밖에는 비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채 오래 앉아 있었다. 어쩌면 이 관계는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몇 주 뒤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나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우리를 더 솔직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날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얻은 기분이었다. 우붓은 진흙투성이였고, 비는 거침없이 쏟아졌고,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서로의 속을 보여주었다. 그날의 우붓은, 소유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