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감기에 걸리다

믿지 않았던 신에게 벌을 받은 날

by 시골쥐 아무개


요가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소풍을 마련해 주었다. 이번 소풍 장소는 발리의 사원에서 정화의식을 체험해 보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나는 코로나 이후로 가장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사원은 요가원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리조트에서 마련해 준 봉고차를 타고 나란히 사원에 가서 사원 관리자에게 사원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해가 강하게 내리쬐었고, 날은 생각보다 더웠다. 입구에 들어서니 사롱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사람들에게 똑같은 사롱을 입혀주었다. 두 번째로 입어본 사롱이었다.



사원 입구에서 사원 관리자는 사원이 무엇을 모시고 있고, 우리는 어떠어떠한 의식을 행할 것이다라는 설명을 아주 오래 찬찬히 해주었다. 그런데 내리쬐는 뙤약볕에서 듣다 보니 하나둘씩 말이 귓등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나 역시 오래간만에 가득한 인간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요리조리 돌아다니는 하얀 강아지의 뒤꽁무니만 바쁘게 바라보았다.


기나긴 설명을 듣고 사원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발리는 물을 신성시 여긴다고 하더니 사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작은 폭포와 물 웅덩이가 있었다. 숲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늘이 지기도 했고 물가에 와서인지 약간은 몸이 떨리는 정도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의식은 물이 나오는 곳 3군데에 서서 물을 맞으며 물을 세 번 마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누군가 모두가 마음속으로만 걱정하던 부분이었던 물의 식용 여부를 사원 관리자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사원관리자는 말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진 않았다."


요기들은 웅성거렸다. 물웅덩이를 보니 물이 더럽지도 깨끗해 보이지도 않았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걱정스레 묻기도 했다. "너 정말 마실 거야?"


나는 원래가 무신론자이기도 했고 이런 의식은 문화 체험에 가까운 행위였기 때문에 정말 흉내만 낼 참이었다. 그런데 약간 추운 와중에 물속에 들어가려니 엄두가 안나 먼저 용감하게 물웅덩이로 들어간 친구들을 구경했다. 의식을 행하는 친구들의 뒷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비장했다. 의식을 끝내고 나온 친구들은 곧바로 사원 관리자들에게 이끌려 신부님에게 기도를 받았다. 물을 뿌리고 미간과 쇄골 가운데 즈음에 쌀을 붙였다. 귀에 꽃도 꽂아주었다. 정말 발리스러운 의식이었다.


의식을 끝낸 친구들에게 어땠냐고 물어보기도, 걱정스레 물을 진짜 마셨냐고 묻기도 했다. 친구들은 의외로 시원스레 마셨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용감도 하지. 라는 생각을 하다 거의 마지막에 의식을 행했다. 떨어지는 물을 머리로 맞고 그 물을 살짝 입술에 축이는 척을 했다. 빨리빨리 끝내고 싶었는데 앞서 간 친구가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아 좀 더 하는 척을 하곤 했다.



친구가 내 의식을 영상으로 찍어주어 뒤늦게 보니 뒷모습으로도 어색한 이방인의 움직임으로 무관심한 느낌이 들어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웅덩이에서 나와 신부님 앞에 이끌려가니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신부님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하시기도 했고, 양 옆에서 부산스레 내 귀에 꽃을 꽂아주시는 것이나 내 미간에 쌀을 붙여주시는 것이나 모두 나를 위해 해주신다는 기분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의식을 끝내고 사원 입구에서 나에게 사롱을 입혀준 어떤 중년의 사원 관리자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리자분은 나에게 어땠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조금은 형식적이지만 발리스러워서 좋았다고 답했다. 관리자분은 너희가 와서 기쁘다며 나를 엄마(mama)라 불러도 좋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나도 그분의 넉살에 넘어가 엄마라 부르며 포옹도 하며 즐겁게 떠들었다.


사원 밖으로 나와 봉고차로 돌아가자 사원 관리자들이 학생들에게 구글에 좋은 리뷰를 부탁하는 명함을 전달하였다. 이 모든 게 비즈니스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신부님들이 해주신 기도는 비즈니스 논외로 진심이리라 하는 생각으로 귀가했다.





발리는 보통 4월부터 10월까지 건기이다. 그걸 알기에 나도 건기에 맞추어 옷을 가져왔건만 야속하게도 내가 있었던 7월은 이상기후로 비가 정말 많이 왔다. 날이 생각 이상으로 춥기도 했다. 그만큼 추운 환경에 노출이 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사원에 다녀온 이후로 몸살이 오기 시작했다. 소화가 되지 않고 입맛도 떨어지더니 열이 났다 말았다 하다가 기침을 심하게 하기 시작했다. 이 이후로 모든 수업에 차질이 갔다. 하루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오전 수업 전부를 빼먹은 탓에 선생님과 바르셀로나 친구 로제가 내 문 앞에 내 생사를 확인하러 찾아오게 만들기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감기에 걸린 건 나뿐이 아니었다. 많은 친구들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열이 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덕에 나는 정말 다양한 국적의 약을 먹을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약을 공유하며 이게 더 낫더라, 누구네 꺼가 잘 듣더라 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약을 주고받았다. 나는 시내에 나가 약국에서 마시는 약도 사 마시고, 일부러 따뜻한 쌀국수를 사 먹기도 하며 온갖 노력을 했으나 감기는 2주를 넘게 갔다. 무엇보다 기침이 너무 심했다. 단체 생활을 하며 기침을 하고 있자니 민망하고 미안해 급하게 시내에서 사 온 사롱을 목에 칭칭 감고 입을 가리며 매일 어서 감기에 낫기를 바랐다.



하루는 아픈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가 문득 사원에서 “엄마라 불러도 좋다”고 하던 관리자가 떠올랐다.


"엄마, 나 아파.."


아무래도 사원에서 대충대충 했던 의식 탓에 믿지 않았던 신에게 벌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이전 08화나는 그날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