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아직은.
아쉬탕가가 끝나면 끝나자마자 무섭게 다음 수업이다. 하루의 마지막 수업은 바로 명상. 폴란드에서 온 선생님께서 진행하시는 수업이다. 200시간과 300시간 모두가 모여서 듣는 수업이라 꽤나 북적북적한 수업이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완전히 어둠이 찾아오면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서 다양한 명상 기법들을 배웠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참선하는 식의 명상만 명상인 줄 알았지만, 명상의 세계 또한 아주 넓었다. 하지만 명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선은 명상을 하는 버릇이 없거니와 온통 뚫려있어서 반야외와도 비슷한 환경에서 아쉬탕가로 땀에 흠뻑 젖은 몸을 모기에게 노출한 채 명상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샤워를 하고 오기도 시간이 촉박해서 땀냄새가 풀풀 풍기는 인간들은 속절없이 모기들에게 쥐어 뜯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해가 진 7월의 발리는 추웠다. 나는 여름 나라에 온답시고 긴 옷을 거의 챙겨 오지 않았는데 가만히 생각을 집중하고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명상 시간에 나시, 혹은 브라탑만 입고 앉아있는 건 그 자체만으로 고행이었다. 심지어 7월의 발리는 건기인데 내가 있을 때는 이상기후로 비가 정말 자주 왔다.
여차저차 이런저런 이유로 명상 시간은 저녁 먹기 전 마지막 견딤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는 명상이 맞지 않았다. 생각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고, 나는 현재에 머무는 법을 몰랐다. 그런데 명상 수업에 흥미가 조금은 떨어진 어느 날 명상 수업에서 그룹 옴 찬팅을 했다.
그룹 옴 찬팅은, 원의 가장 안쪽에 한 명, 다음으로 한 명을 3명 정도가 둘러싸 앉고, 또 그 3명을 다수의 사람이 둘러싸 앉고 그런 식으로 겹겹이 원을 그리며 앉아서 옴(Om)을 크게 외는 식이다. 옴은 A-U-M이라는 발음으로 풀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A-U-M을 길게 외면된다. 시작은 다 같이 하지만 각자의 호흡이 어긋나며 A-U-M은 메아리처럼 겹쳐졌고, 소리는 점점 깊은 골짜기처럼 울렸다. 그리고 A-U-M이라는 외침은 가슴에서 공명하는 소리라 싱잉볼처럼 미세한 진동이 느껴져 중앙에 있을수록 이 감각이 굉장히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는 처음엔 명상에 관심이 크지 않아 원의 가장 바깥에 있었다. 굉장히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지만 나는 의미 없이 옴을 외쳤고 나에게 큰 울림이 있진 않았다. 중간에 음이 홀로 다르거나 삑사리가 나는 친구의 옴이 더 크게 들리기도 해 진지한 분위기에서 나 혼자 웃음이 슬쩍 나오기도 했다.
명상이 끝나고 나는 멀뚱히 앉아있는 홍콩인 친구 (하지만 현재는 영국에서 사는) 플로렌스에게 물었다.
"Feel Something?"
그 친구 역시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무심하게 "Nothing"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곳곳에 명상 이후로 무언가 Feel Something을 한 듯한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같은 경험이라도 각자 느끼는 것이 다르구나- 하고는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강렬한 경험을 했던 친구들은 저녁을 먹으며 너 나 할 것 없이 열띤 토론을 했다. 특히 중앙에 앉아있던 친구 - 에콰도르 출신이지만 스위스에 살고 있는 마리아는 내 곁으로 와서 마음이 너무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녀의 눈물에 당황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이 힘든 상태에서 옴의 공명을 중앙에서 느끼니 가슴속에 있던 아픔이 증폭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명상에 대한 무관심에서 "왜 나는 느끼지 못했을까? 나도 뭔가를 느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샘솟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너무 이성적인 태도로 사람을 대했고, 그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기도 했다. 타인에 대해 공감이라는 감정이 부족했고 그게 나 자신을 대함에 있어도 똑같이 적용이 되었다. 슬퍼도 슬픈 걸 자각하지 못하고, 기뻐도 기쁜 걸 자각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명상은 결국 그런 나를 가만히 마주하는 일이었기에,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실은 명상이라는 행위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명상으로 하여금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느끼지 못한 건 둔해서가 아니라, 아직 나를 마주할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라는 걸. 어쩌면 명상은 무언가를 느끼는 시간이 아니라, 느끼지 못하는 나를 인정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날 이후로, 나는 명상 시간을 조금 더 성실하게 임해 보기로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