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과정에 있었다

그럼에도 당신도 해낼 수 있습니다

by 시골쥐 아무개


점심은 아침보다는 좀 더 칼로리가 있다. 편차도 크게 없이 맛있게 나오는 편이기도 하다. 다만 점심은 아침보다 좀 더 깨어있는 시간 때다 보니 밥상머리에서 말들이 많다. 나는 밥 먹으면서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밥 먹는 중에 말을 거는 상황이 조금은 어색했다. 그래서 대체로 청취자가 되어 친구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기만 했다.




점심을 먹으면 한 시간 정도 자유시간이다. 시간표에는 self-practice라고 되어있다. 나포함 모두들 입소 초반 넘치는 열정을 갖고 샬라에 가서 열심히 자습을 했으나 점차 이 시간은 낮잠 시간이 되고 말았다. 물론 풀장에서 수영을 한다던지 책을 읽는다던지 개인 시간을 갖는 친구들도 있었으나 나는 대체로 부족한 체력을 채우는 시간으로 썼다. 낮잠을 열심히 자고 일어나면 오후 수업 중 가장 재미있는 아쉬탕가 수업이다.


아쉬탕가 수업은 담임선생님과 같은 포지션의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는데, 선생님은 우리에게 아쉬탕가뿐 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들도 많이 가르쳐주셨다. 그래서 나도 심적으로 꽤나 많이 의지했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인도 리시케시에서 온 분으로, 키는 조금은 작은 편이나 서있을 때의 느껴지는 꼿꼿함과 단단함이 그가 요가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까랑까랑 우렁찬 목소리를 가지셔서 선생님의 수업은 늘 자신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수료증을 받기 위해서 친구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2번 해야 했다. 개중엔 이미 요가강사를 업으로 하는 친구들도 있었으나 많은 친구들이 수업 경험이 없었다. 200시간 TTC를 경험한 친구들이라도 200시간의 경우 그룹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한 시간 정도를 온전히 스스로 이끌어본 경험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나 역시 그랬다. 매번 수업을 받기만 했지 내가 한다니. 그것도 영어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 시간을 혼자 진행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걱정 어린 친구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선생님은 차분히 질문 하나하나 대답해 주시다 말씀하셨다.


"나는 무대공포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영어가 모국어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모국인 인도 밖에서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여러분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내가 했으니, 여러분들이 못할 이유가 없다."


선생님의 무대공포증 사실을 들은 친구들은 잠시 숙연해졌다. 숙연이랄까, 깨달음을 얻은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처음은 어렵다. 하지만 그 경험들이 쌓이고, 그것이 비록 실패일지라도 나는 배울 수 있다. 나는 그 과정에 있는 것이다. 마치 무대공포증이 있지만 지금은 무대를 즐기는 듯이 느껴지는 선생님처럼 되기 위해.



나는 이곳에 아사나(행법)를 배우러 온 것이라 생각했다. 더 깊게 꺾고, 더 오래 버티고, 더 잘 해내는 법을 배우러 온 것이리라.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나를 배우러 온 걸지도 모르겠다. 두려움 앞에 서는 나, 영어라는 언어 앞에서 작아지는 나, 그래도 해보기 위해 용기 내어 매트 위에 서는 나. 이것이 나의 스바디아야인 것 같다.



스바디아야는 요가 철학에서 말하는 니야마(자기 수련)의 하나로,
‘자기 탐구’, 곧 나를 관찰하고 알아가는 수행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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