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아진 어깨끈
내가 외적인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인 것을 아이 키우면서 확실히 알았다. 사회 초년생일 때 가방도 사보고, 머리색도 바꿔보고, 네일도 받아보고 꾸미려고 노력했던 건.. 에너지 넘쳐서 남들 따라 그 흐름에 잠깐 올라탔던 거다. 일단 단장하려고 어디 오래 앉아있고 누워있는 게 너무 피곤하고 시간이 아깝다. 그럴 시간에 집에서 누워있고 싶어서 깨끗하고 단정한 적당한 행색으로 타협했다. 레오타드도 뒤집어 입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막 입고 다녔다. 그때마다 원장님이 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시고 레오타드에 꼬아진 어깨 끈을 매만져주셨다. 그 섬세함이 참 감사하다 생각하던 어느 날, 또 조용히 어깨 끈을 바로잡아주시다 진지한 말투로 눈에 계속 거슬려서 저절로 만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로 거슬리지 않으려 연습실 나설 때 옷매무새를 꼭 체크하게 되었다.
발레를 배우며 거쳐온 선생님들의 교습법은 가지각색이지만 다들 공통적으로 복장의 정갈함을 강조하셨다. 무엇이든 묶은 리본은 보이지 않게 깔끔히 정돈하는 게 기본 중에 기본이라 배웠다. 선생님들 중에 내 슈즈에 삐죽 나온 매듭을 가위로 톡 잘라 안 보이게 숨기는 분도 있었고, 스커트 뒤에 묶은 리본도 꼭 안쪽으로 넣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분도 있었다. 토슈즈 매듭을 밖으로 보이게 슈즈를 신고 발레를 하는 것은 마치 연필을 주먹 쥐듯 잡고 글씨 쓰는 것과 같다고도 하셨다.
동작도 마찬가지였다. 레오타드 매무새를 잡아주던 원장님의 수업엔 셰프 특선처럼 '오늘의 조지는 포인트'가 있었다. 조진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당한 나로서 대체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특선 포인트가 제대로 수정될 때까지 손으로 교정하고 훈련시켰다. 될 때까지 연습을 시켰기 때문에 '나는 지금 엄청난 노력을 하는데 이게 될 유전자가 아님'을 어필해야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발레는 숨어있는 미세한 근육들을 찾아 나사 조이듯 조금씩 조이고 또 조여서 내 안에 중립과 정렬을 찾는 여정이라는 것을 배웠다. 겉으로 보는 동작에 비해 엄청난 노력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배울수록 느꼈다. 확실히 몸의 중립을 잘 잡은 자세는 다리를 높이 들지 않아도 안정감을 준다. 아무리 다리를 높이 올라가도 정렬이 무너지면 애매하게 흉내 냈다는 느낌밖에 주지 않는다. 옷매무새는 정리하면 끝이지만 몸은 뚝딱 정리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정확한 발끝 모양'에 대해 한껏 담금질을 당하는 날이면 나아지지 못한 아픈 발등과 높아진 안목만 가지게 됐다. 이런 식의 가르침을 하나 둘 하사 받으며, 발전은 미미하나 보는 눈은 엄격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그렇게 원장님의 거슬렸던 레오타드 어깨끈처럼 내 눈에 밟히고 신경 쓰이는 것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은 엘리베이터에 게시된 운동센터 광고 사진 모델의 비뚤어진 신체 정렬이 거슬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다음에 교체된 요가 센터 광고 사진을 보고 ‘어깨가 너무 솟아있어…’ 탄식하는 나의 속삭임에 가족들은 적당히 하라고 충고했다. 아이가 거실 바닥에 편하게 앉아있으면 지나가면서 ‘골반 틀어졌어.’ 하고 바로 잡아주고 남편의 서 있는 모습이 불편하면 다가가서 “코어에 힘줘야지.”하며 지적을 남발했다. 수업시간에 지적을 많이 받은 날이면 더 폭주했던 것 같다.
학원 밖에서 발레를 컨셉으로 한 콘텐츠를 만나면 반가움과 동시에 엄격 레이더가 켜졌다. 발레를 컨셉으로 잡았는데 슈즈에 리본이 치렁치렁하거나 토슈즈 매듭이 너덜거리는 게 보이면, 다리 한 짝씩 붙잡아서 리본 잘라 발목 안쪽으로 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골반이 밖으로 뒤집어지거나, 애매하게 턴 아웃 안 한 발 모양이 눈에 들어오면 ‘조금만 몸 잡아주면 예쁠 텐데…’하며 아쉬움에 주절거렸다.
그러다가 발레리나를 모델로 내세운 패션 화보를 본 적이 있다. (위 사진) 깔끔히 정리한 토슈즈 매듭, 옷으로 다 가리고 있어도 느껴지는 정확한 동작과 디테일. 라텍스 매트리스에 누운 것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 동작은 차치하고 정갈하게 빗은 머리와 깔끔한 차림새, 의상에 리본을 잘 정돈해 매듭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컨셉의 일부, 패션 화보인데 동작 그런 거 뭐가 중요하냐고 하지만 발레를 테마로 잡았다면 이런 디테일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킬 건 지키고 그 위에 보여주고 싶은 색깔을 뽐내면 더 좋지 않을까? 여기까지가 발레 흥선대원군 시절의 내 마음이다.
어느 날 딸아이랑 침대에서 뒹굴거리는데 뜬금없이 아이가 이야기했다. 어릴 때 딸아이는 두 발목에 양말선 높이가 똑같고, 내의와 겉옷 외투의 소맷단이 딱 맞아야 안심하고 집 밖에 나갈 수 있었다.(이것 때문에 아침마다 등원전쟁에 양육상담까지 받았다.) 그때의 자기는 모든 것이 딱 맞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랬는데, 어떤 애니메이션을 보고 안 그래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배웠단다. 꼬맹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해서 제목을 물어봤다. 제목이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부터 선 맞추기를 그만뒀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너무 강박적으로 발레를 품으려 했다는 걸 자각했다.
그 이후 다양한 측면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발레를 하니 마음의 여유가 많이 생겼다. 선생님의 빡센 교정에 좌절하지 않고 아무렴 어떤가 행복하면 장땡이지~ 하며 요즘은 개방적인 발레를 한다. 이제는 같이 발레 하는 사람들이 리본으로 치렁치렁 온몸을 치장하건, 토슈즈 리본으로 리듬체조를 한다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마음이 꼰대가 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 활짝 열린 마음으로 하는 발레처럼 평소에도 이 마음가짐을 잊지 말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