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취재하기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코트워치가 만들어진 지는 1년 반 정도가 됐고요. 최근에 깨달은 것은 그동안 대법원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취재 중이던 사건의 선고를 보러 갈 기회가 있었지만 다른 일정과 겹쳐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머릿속의 대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사태에 멈춰 있기도 했습니다. 그 이전 혹은 이후에 대법원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대선 기간에 사법부를 둘러싼 여러 논쟁이 나온 것을 계기로 공부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대법원이 구성되는 방식, 역할, 지금까지의 대법원장들이 어떤 철학을 갖고 대법원을 이끌고자 했는지 등을 살펴보면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정부와 대법원이 대법관 임명, 사법개혁 과제 등을 사이에 두고 형성하는 '긴장 관계'였습니다.
어느 시기에나 갈등은 존재했고, 조금의 변화라도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른 것은 두 주체 간의 소통 여부였습니다.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권석천, 2017)>라는 책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부를 자세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전 대법원장은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임기 중후반부를 이명박 정부와 함께 보냈습니다.
이 전 대법원장은 대법관 시절에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3심) 주심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1996년 15대 총선에 출마한 이명박 의원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선거운동 과정에서 선거비용을 초과 지출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2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자진 사퇴했습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갔습니다. 1999년 4월, 대법원 형사2부는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여론조사 비용 초과지출' 부분을 무죄에서 유죄 취지로 바꾼 겁니다.
'총선 당시 이명박 전 의원이 직접 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은 아니지만, 이 전 의원의 선거활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고, 직접 비용을 낸 것이 아니라고 해서 무죄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의원직 사퇴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이명박 전 의원은 대법원에 '이용훈 대법관의 판결은 오판'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었다고 합니다.
이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자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대법관 인선 문제를 두고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당시 청와대와 대법원 사이의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에 임기가 시작된 이재명 대통령은 조희대 대법원장과 앞으로 2년을 더 일하게 됩니다.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조 대법원장의 임기는 2027년 6월까지입니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임기 안에 임기가 끝나는 대법관 3명에 대해 제청할 수 있고, 후임 대법원장이 6명의 대법관을 제청할 예정입니다. (현행 대법관 14인 기준)
(대법관 임명의 경우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하면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구조로 이루어집니다.)
대법관 인선을 비롯해 여러 법조 현안을 두고 새 정부와 대법원이 '최선의 결론'을 찾아갈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