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아리셀 공장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사고 현장을 보기 위해 한 번, 이후 희생자 49재를 취재하기 위해 또 한 번 갔었습니다.
아리셀 공장에 가기 위해서는 산업단지로 가는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야 하는데요. 버스에서 내렸을 때 정류장에도, 길가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도로 양옆으로 '유해물질취급사업장' 마크가 붙은 공장들이 들어서 있었고, 멀리 보이는 건물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작년 6월 24일, 공장 노동자 말고는 사람도, 차량도 거의 다니지 않는 산업단지에서 배터리 폭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날 공장에서 일하던 23명의 노동자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올해 1월 첫 재판이 열리고 선고가 나오기까지 8개월 동안 아리셀 박순관 대표는 초연했고, 박중언 총괄본부장은 괴로워 보였습니다.
박순관 대표는 '(아들 박중언에게) 경영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선배'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박중언 본부장도 아리셀 설립 이후 본인이 경영을 맡아 '주도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왔다'고 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다수의 직원이 "실질적인 운영은 박중언이 해왔다"고 진술했습니다. 재판을 방청하는 입장에서 '박순관이 중대재해처벌법 상의 경영 책임자¹로 인정될 것인지'가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이번 주 화요일(23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장은 '아리셀의 경영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길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재판부는 "아리셀의 일상적인 업무는 박중언이 총괄로서 수행하여 온 것"을 인정하면서도 "(박순관이) 박중언을 지시·감독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고, (...) 직접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률상·사실상의 지위에 있었다"고 봤습니다. 박중언이 아닌 박순관을 경영 책임자로 봐야 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사고 발생에 중대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된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15년, 아리셀 법인에는 벌금 8억 원이 선고됐습니다. 보석 석방된 상태였던 박순관 대표는 법정 구속됐습니다. 재판장은 "연락을 남길 가족 연락처를 종이에 적으라"고 했습니다.
1심 선고 이틀 뒤인 목요일(25일), 아리셀 측은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산재 반복의 악순환'을 언급했습니다. 여러 기업이 안전보다는 이윤에 집중해 회사를 운영하다가 산재가 발생하면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고 선처를 받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아리셀 측이) 유족들과 합의하였다는 사정은 일부 제한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이유'로 적용해 온 기존 산재 사건 판결들과 다른 지점입니다.
선고 직후에 열린 아리셀 대책위 기자회견에서는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여러 번 나왔습니다. 유가족 한 분은 "앞으로 2심, 3심에서 (아리셀 측이) 얼마나 더 유가족들을 모욕할지 벌써 힘이 든다. (...) 그런데 저희는 계속 갈 거다. 재판 과정에 관심 가져달라"고 말했습니다.
아리셀 참사 재판은 이제 항소심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판결이 '산업재해의 악순환을 끊는'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코트워치도 취재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¹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란 '안전과 보건에 관한 최종적인 책임과 권한을 가진 최고 의사결정자'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대표이사가 이에 해당되지만, 상황에 따라 실제 총괄 권한을 가진 임원이 포함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