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같은 엄숙함과 기립

청주 법원에서 희한한 재판장을 보고 있습니다.

by 코트워치

재판장은 처음부터 조금 희한했습니다.


앞으로 재판을 어떻게 진행하겠다고 발표 했습니다. PPT를 준비해와서 발표하는 재판장은 처음 봤는데요, 말을 하면서 자꾸 한숨을 쉬었습니다.


"지켜보는 피해자들도 그렇고.. 아휴.. 이 재판에 큰 관심이 있고, 큰 의미를 두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래 끌 일도 아니고.. 과도하게 길어지는 걸 원하는 피고인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김주형 기자와 제게 모두 인상적이었던 건, 이 재판장의 법정에서는 기립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재판을 시작할 때, 판사가 들어오면 법정 안의 모두가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라고 합니다) 이때 고개 숙여 인사하는 판사도 있고, 아닌 판사도 있습니다. 판사가 앉으면 모두가 앉습니다.


그동안 예외가 없었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그래도 몇몇 변호인은 재판장이 들어오면 엉거주춤 몸을 일으킵니다) 조금 어수선한가 싶기도 했지만, 새로웠습니다. 재판에 대한 재판장의 관점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달까요.



종교 제의 같은 엄숙함


법정 기립은 왜 하는 걸까요?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은 또 있었습니다. 자료¹를 보니, 국민신문고를 통해 기립 민원이 한 해 몇 건씩 들어왔다고 합니다. '판사가 들어올 때 왜 일어나야 되느냐',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같은 내용으로요.


기립 규정은 따로 없지만, 사법부나 법률을 존중하는 의미의 관행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유럽과 일본, 미국 법정도 비슷하고요. 그런데 아래 의견이 눈에 띄었습니다.


법관 F: 당사자들로 하여금 재판의 결론을 납득하게 하려면, 결론에 이르는 과정 자체도 일종의 종교제의처럼 엄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와 같은 맥락에서 (기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재판은 당사자들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단순 방청객일지라도 그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재판의 결론을 납득하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립 같은 '엄숙함'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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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는 질문


청주 법원에서 본 희한한 재판장의 법정에는 기립이 없습니다. 재판장은 자꾸 웅얼웅얼 혼잣말하듯 말하고, 언론 기사를 띄운 자기 모니터를 보여주는 데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담아 질문합니다.


1월 13일, 공무원 증인 A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당시 같이 일했던.. 아휴.. 증인 입장에서 괴로울 수도 있지만, 죄가 있든 없든, 사고 부서인 건 맞잖아요. (네) 그때 일했던 부서에 사고가 발생한 원인이 있다고 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게 있어요? 다른 부서에서 일해 보니까 문제겠다 싶은 것? (어.. 잘 모르겠습니다)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아요? (네) 속담이 있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그래도 외양간을 고쳐야 되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보는 건데. 증인 젊은 공무원이고, 외부와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고.. 한 번 더 물어볼게요."


1월 14일, 공무원 증인 B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본인이 객관적으로 알고 있는 게 가장 많은 증인일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일을 하셔야 하는데, 느낀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기회를 드릴게요. 없으시면 안 하셔도 되고. 내 말도 한 번 정도 들어줬으면 좋겠다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사건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의지, 피고인과 피해자, 증인 개인을 대하는 태도, 질문을 통해 언뜻언뜻 비치는 생각들, 너그러움과 단호함의 구분…


여러 법정을 돌이켜보면 반강제적으로 하는 기립보다, 법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판사가 보이는 모습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


증인 A와 B는 크게 의미 있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법정에서는 종종 이런 마지막 질문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노트북에 코를 박고 있다가도, 이런 질문이 나오면 바로 고개를 들고 증인의 뒤통수를 봅니다. 저 사람은 지금 어떤 표정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뭐라고 할까,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까…


그런데 사건의 본질을 시원하게 밝혀주는 대답이 나오는 일은 드뭅니다.


B 또한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유가족분들께 죄송하고, 더 열심히 하고 노력해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이에 재판장은 혼잣말 같은 말로 신문을 마쳤습니다.


"왜 이 사고가 났을까.. 꼭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잘못이든 없는 잘못이든, 열 사람이 다 잘못하면 사고가 나는 건데.. 결국 사고가 안 나게 하는 건 한 사람이에요. 본인이 해야 하는 일 이상을 주의를 해서, 어 이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해봐야겠다 하는 시도가 사고를 막는.. 아휴.. 경험을 살려서 꼭 사고를 막는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재판에서 찾고자 하는 것을 재판장도 찾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2023년 청주에서 부실 제방의 붕괴로 강물이 넘쳐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했고, 2024년 코트워치는 공사를 맡았던 시공사 현장소장과 감리단장의 재판을 보도했습니다. 공사 관계자들, 공사 현장을 확인했어야 하는 공무원들의 재판이 추가로 진행 중입니다.


¹ 사법정책연구원, '법정 내 질서유지의 현황과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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