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는데 이보다 더 적합한 소설은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스트릭랜드의 삶은 중년의 직장인이 영위하는 전형적인 모습이고 특별할 게 전혀 없다. 그리고 그 특별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태어나는 특별함이 독자를 매혹시키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모습으로 태어나 저마다의 상황 속에서 성장한다. 그 모습은 지역과 문화에 따라 매우 다르게 보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나서 배우고 일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워내고 죽음을 맞이하는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모습이 일반적인 사람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폭넓게 해석하여도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말은 기괴하고 모험적인 상황을 품기 어렵다.
필자가 서술하듯이 인간은 한없이 정의로운 존재인 동시에 한없이 비열한 존재이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인간의 그런 이중성에 대한 통찰이 턱없이 부족했다. 정의롭다고 판단하면 항상 당위성이 뒤따라 온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경청과 동시에 무시해 버리기 일쑤였다. 가치관은 영구불변하는 모습을 띄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불편은 (피할 수 없으면) 지불해야 할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한 사람의 내면에 얼마나 상반된 가치들이 공존하고,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발현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이(이중성)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필자는 평범한 생활 가운데 불쑥 느껴지는 특별한 삶에 대한 동경을 스트릭랜드를 통해 잘 구현했다. 그의 가슴속에서 싹튼 예술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져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망을 품어내는 인간을 잠식하게 되는 과정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변인들의 불편함과 역겨움을 배치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삶이 주는 의미와 현실의 제약에 대해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09년 무렵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의 나는 얼마간의 행운과 노력으로 직장에서 인정받고 있었고 마음속으로는 나의 연기에 속아서 본모습을 보지 못하는 주변인들을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똑같았고 매일매일이 의미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혹시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어릴 적에는 학습이던 놀이던 새롭게 경험하는 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생채기를 낼 수 있는 강렬한 기억이 많이 남는다. 마치 암각화를 그리는 고대인들처럼 자신의 뇌에 그리고 시간의 기둥에 새로운 기억을 새겨 넣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선명한 모습으로 남아있으며 눈을 감으면 어렵지 않게 그 시절에 느낀 생생한 기억을 소환할 수 있다. 반면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고 단조로운 삶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면 새로운 경험은 웬만해서는 만나기가 힘들다. 매일 흘러가는 시간이 어떤 자극도 어떤 의미도 없이 ‘하루를 살아낸다’는 단조로운 표현으로 남는다. 그런 재빠른 시간의 흐름을 먹으며 나의 불안은 하루하루 커져갔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고찰은 고사하고 매일이 견딜 수 없는 낭비로 다가왔다.
혹자는 그럴 수 있다. 맡은 업무를 성실히 하다 보면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노동의 성스러움과 자아실현 수단으로써의 기능에 반기를 들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런 자아실현은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니다. 나랑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에 큰 걱정 없는 편안한 삶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나에게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했다고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대부분의 경우 큰 조직에서 맡은 업무를 성실히 하다 보면 곧 자아가 없어지고 소진된다. 본인의 역할이 톱니바퀴 속에 하나의 부속처럼 느껴지는 때가 금방 오는 것이다. 저런 근사한 말은 본질적인 의미의 이해를 건너뛰고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통치하는 캐치 프레이즈로 전락하기 쉽다.
그렇게 한없이 불안했던 나에게 스트릭랜드의 삶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마치 나도 한 발만 내딛으면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 이상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순례자로 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단조로운 환경과 역겨운 인간들에게서 벗어나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연 그 당시 내가 생각의 허울을 모두 던져버린 상태였는지 의심스럽다. 겉으로는 달(이상)을 쫓아서 날아가고 싶은 펜스(현실) 속의 새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펜스(현실)가 너무 익숙하고 편해서 문을 활짝 열어놓아도 날아가지 않는 새였던 게 아닐까?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역겨운 인간이지 않았을까? 기본적으로 직장이라는 곳이 같은 목표(수익 창출)를 향해 매진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낭만적인 생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게 당연하다. 그런 생각은 매우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 온 나는 또 한 번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흔들림은 과거와는 좀 다르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흔들려 생각의 허울과 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는 과정이다. 머리를 날카롭게 다듬고 펜스 너머의 자유로운 생각과 만나게 되는 날을 조용히 준비하는 평범하고 특별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