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짜장 or 짬뽕

by 윤현섭

내가 학창 시절 때는 학생을 평가하는 방법이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중간 또는 기말고사로 불리는 지필시험. 나를 포함한 대다수가 시험공부를 미루고 또 미루다가 마지막에 벼락치기로 대응한 걸 보면, 성실한 학생을 선별하는 측면에서 별로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특히 체육, 음악, 기술 등의 비주요과목은 시험 당일날에 책을 펴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시험범위가 정해져 있고, 모두가 같은 문제를 받았으며 '정답'이 존재한다는 면에서 볼 때,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별로 없었다. 가끔 (내가 생각하기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내는 선생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그건 시험문제를 푸는 쪽이 감당해야 할 숙제였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요즘은 지필시험뿐만이 아니라 수행평가라는 게 생겼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왠지 그게 실기시험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중고딩 우리 애들이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수행평가는 결국 쪽지시험과 이음동의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점을 맞춰야 하는 양궁선수에게 두발의 화살이 아닌 네다섯발의 화살이 지급된 것이다. 한두 번 실패해도 결국 본인의 통산타율로 수렴하게 되는 야구선수처럼, (정답이 있는) 시험을 자주 치르는 건 학생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수행평가는 도대체 왜 필요한 걸까?

얼마 전 첫째가 책상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일로 죽상이냐는 질문에 첫째는 도덕 수행평가 때문이라고 답했다. 100점 만점에 20점이나 반영되는 중요한 수행평가인데 도무지 어떻게 작성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선생님이 어떤 주제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써오라고 했다는데, 평가 기준은 창의성이라고 했다. 선생님이 몇 살 정도 되시냐는 나의 질문에 첫째는 나이는 잘 모르겠으나 아빠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인다는 예쁜 표현을 썼다. 난 혼란스러웠다. 누군가의 말처럼 특정 나이에 도달하면 뇌가 썩는다고 믿지는 않지만, 보통 40대 중반 이후가 되면 창의성과는 다소 멀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창작활동을 업으로 하거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창의성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에 불과하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생각의 경로가 굳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첫째의 도덕 선생님은 과연 어느 쪽일까? 난 보통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첫째가 다니는 학교는 한 반에 30명이 넘는 과밀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비주요과목 선생님들은 한 학년을 통째로 맡는 경우가 허다하고, 각종 행정업무에 함께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근이 없는 직장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이 제 때 퇴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모든 일을 루틴화 하는 것이다. 루틴화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기대한 만큼'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꼭 필요한 만큼만 효율적으로. 그런 하루를 사는 사람이 과연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천재들조차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과 정성을 쏟는데, 평범한 사람은 어렵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쯤 되니 창의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창의성을 평가하는지 궁금해진다. 그건 단순히 그렇다 아니다를 따지는 OX도 아니고, 모든 학생들의 창의성을 '점수화' 해야 하는 작업이 아닌가. 나로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무척 창의적이라고 평가해도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주 고루할 수 있으며, 그건 다시 말해 복불복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우연히 만난 도덕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나의 점수가 결정되는 게 과연 공정한걸까? 어떻게 준비할 거냐는 나의 질문에 첫째는 주변의 다른 친구들처럼 알트만 삼촌(?)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라고 답했다. Super 창의적인 인물이 만들어낸 챗GPT가 지구 반대편에서 고민하는 고딩들을 구원하고 있다니, 참 웃픈 현실이다. 난 고딩답게 잼민이(Gemini)를 이용해 보라는 조언을 남기고 첫째 방을 나왔다.

오늘 아침에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한 꼬마를 만났다. 세네 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었는데, 목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침을 질질 흘려가며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는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를 밟아 죽이고 있었다. 아이가 발을 옮길 때마다 개미는 영문도 모른 채 소리 없이 죽어갔고, 대량학살은 옆에 앉아 있는 엄마의 통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해맑은 표정으로 살생을 저지르는 아이를 보며, 난 선악의 개념도 결국은 학습을 통해 형성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옳고 그름에 대한 '주관적인' 신념 체계인 도덕은 과연 정답이 있는 과목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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