塞翁之馬
난 은밀하게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태어나서 지금까지 45년 넘게 쓰지 않던 존댓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요. (굽신굽신)" 그건 분명 내 목소리였지만,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너무 얇았다. 테이블 건너편의 상대방은 "뭘 이런 걸 다 준비했어."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투를 집어 들었다. 너무 두툼해서 혹시 천원짜리가 아닐까 잠깐 의심한 듯했지만, 봉투 밖으로 은은하게 비치는 이도 할배의 실루엣을 보며 엄마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이 지어 보였다. "으이구 이 화상아. 니가 내 아들인 게 창피하다 창피해. 아무튼 물건(?)은 잘 받았으니 유미한테 전화 한 통 넣으마."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하고 온 세상이 종말로 치달을 무렵, 유일한 취미였던 수영을 못하게 된 나는 극심한 우울감에 휩싸여 있었다. 새벽 운동 후에 상쾌한 기분으로 출근하는 루틴이 깨져버렸고, 직장에서도 좀처럼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자애로운 신께서는 다둥이 아빠(카드 소지자)를 궁휼히 여기시어 한줄기 동아줄을 내려주셨고, 그렇게 난 운명처럼 탁구를 만났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 탁구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운동이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적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으며, 다소 숨이 벅차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뭐든 잘 시작하지 않지만, 일단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 나는 급격하게 빠져들었다. 탁구는 여러모로 내 성향과 잘 맞았다. 빠른 템포로 상대방과 실력을 겨루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고 싶은 시간에 칠 수 있었다. 1년 365일 중 360일을 탁구장에 갔고, 심지어 아무도 없는 명절날에는 기계연습이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마 나머지 5일도 터미네이터의 레이저 눈빛이 아니었다면 분명 갔을 것이다.)
탁구광인이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나에게 2025년 10월 11일 시대회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설렘과 하필 추석연휴 직후라는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기묘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영원한 나의 편인 '엄마'를 찾아갔던 것이다. 전생에 누구보다 게으른 삶을 산 나에게 떨어진 형벌, 터미네이터를 조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바로 울엄마. 연휴기간 내내 집으로 수많은 쿠팡 박스가 도착할 때마다 난 맨발로 헐레벌떡 뛰어나가 내용물을 확인했다. 응! 초코 소라빵, 응! 치즈 폭포 돈까스, 으응? 뼈발리송. 다행히 10월 4일 저녁까지 전의 재료로 볼 수 있는 물건은 전혀 도착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침대에 누우면서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해 터미네이터에게 들킬 뻔했지만, 허벅지를 꼬집어 다행히 넘어갈 수 있었다. 정말 고마워 엄마. 앞으로 이도 할배랑 자주 만나게 해 줄게.
추석 전날 이렇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게 얼마만이던가? 잘못된 결혼을 하고만 2008년 이후 처음이지 싶다.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긴 나는 깨끗한 주방을 보며 생각했다. '터미네이터가 일어나기 전에 조용히 씻고 탁구장으로 가면 되겠구나!' 그 순간 현관벨이 울렸고, 배달이요라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불길했다. 쿠팡은 절대 벨을 누르지 않는다. 앱으로 도착 알림이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내 뒤에는 로그인을 끝낸 터미네이터가 서있었다. "이번에는 연휴가 너무 길어서 착각했지 뭐야. 다행히 제때 도착했네." 현관문을 열자 정확히 라면박스 네 개 분량의 전 재료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까꿍!). 집 앞 마트에서 사니까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쓸 수 있어 좋다는 터미네이터의 얼굴 위로 엄마의 얼굴이 겹쳐졌다. 난 울분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혹시 엄마가 전화해서 무슨 얘기하지 않았어?" 터미네이터는 만면에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어머니가 이번 명절부터 전은 준비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집 앞 반찬가게에서 조금만 사겠다고 했는데, 어제 가보니까 민생 쿠폰을 못 쓴다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서 가야지 뭐." 난 민생 쿠폰 따위는 안 써도 아무 상관없고, 얼마든지 내 카드로 긁으라고 울부짖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남은 연휴기간 내내 동전파스로 허리를 도배했는데도 불구하고, 네 시간이 넘는 중노동의 여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세 놈들이 번갈아가면서 집어먹지만 않았어도 좀 괜찮았을 텐데, 역시 무자식이 상팔자다. 그리고 처음 참가하는 시대회는 그렇게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대회 당일 일찍 XX체육관에 도착한 나는 50개가 넘는 탁구대가 꽉 찬 걸 보며 놀랐다. 나중에 들어보니, 대회 당일에는 몸을 풀기 위해 새벽부터 와서 자리를 선점한다고 한다. 처음 와본 놈이 뭘 알겠는가. 난 이왕 (전 부치느라) 버린 몸인데 그저 예선만 통과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욕심을 버려서 그런지 3승,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한 나는 64강에 안착했다. 그리고 토너먼트부터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연휴 내내 시달리느라 힘이 완전히 빠져버린 나는 팔을 채찍처럼 휘둘렀고, 포핸드와 백핸드 드라이브는 상대 코트에 날카롭게 꽂혔다. 64강 → 32강 → 16강 → 8강 → 4강. '이러다가 진짜 결승 가는 거 아니야?' 시작할 때는 깔끔하게 비웠던 마음에 슬슬 불안감이 차올랐다. 4강 경기가 시작되자 바로 무아지경에 빠졌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결승에 진출해 있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 죽상인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내가 그 처지가 되어보니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우승과 준우승은 한 끗 차이가 아니다. 하늘과 땅 차이다. 우승을 못할 바에는 차라리 3위가 낫다. 동호회에서 와준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들으며 입장했는데, 막상 결승이 시작되자 내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날 밤 현관문을 열자 아직 로그아웃을 하지 않은 터미네이터가 열렬히 박수를 치며 나를 맞이했다. "내가 윤현섭씨 독한 건 진작에 알았는데, 설마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우리 애들도 너 닮았으면 독하게 공부를 잘할 텐데 왜 저런가 몰라." 내가 아닌 너를 닮아서라는 간단한 사실조차 모르는 터미네이터의 해맑은 얼굴을 보면서 난 그저 따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굳이 싸울 필요는 없지. 그리고 문득 내가 10시간 넘게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씻고 나올 테니까 전 남은 거 있으면 좀 데워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