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다니던 영어교실을 갑자기 쉬고싶다는 아이
딸아이가 잘다니던 영어 방과후교실을 쉬고싶다고 한다. 숙제를 하루에 한 페이지씩 하는 것을 삶의 철칙으로 삼아 하루하루 쌓여가는 실력으로 흐뭇해하면서 다음분기 수강신청을 자신있게 해놓았는데 갑자기 그만두고싶다는 말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해도 단호하다. 왜 그러느냐고 선생님도 놀라실거라고 물어보니 주위 친구들은 방과후 한개씩만 듣는데 두개나 들어 부담이라는 거다. 그리고 학교 숙제가 그림일기쓰기가 생겨서 하루에 해야할 숙제가 많아졌다고 한다.
생각이 많아졌다. 영어를 배워야하는 이유에 대해 설득해야할지 아니면 영어 교실을 계속하게 된다면 어떤 이득이 있을지 설득해야할지 이길의 끝에는 외국인과 대화한번 해 볼 수 있는 해외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할지. 영어선생님에게 전화해서 숙제를 내주지 말아달라고 하고 수업을 빼먹을 아이는 아니니 수업만 꾸준히 들어도 실력이 쌓일거같은데 그것도 싫단다. 우리아이는 숙제를 빼먹으면 못견뎌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그런지 숙제를 못해갈거같다하면 수업자체를 싫어한다. 영어교실의 끝에 큰 소망을 발견하지 못한듯하다. 이 꾸준함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듯하여 그러라고 했다.
교육은 edu, 내면에 있는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주는것이라 한다. 그런데 요즘 교육은 외부에서 지식을 주입, input하는것으로 잘 못 이해되고 있다고 한다. 그 연료는 주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발견할때까지 기다려줘야할 것이다. 내면의 것을 꺼내쓸 수 있게 하는 교육이 분명히 어딘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다들 실력을 키우는데에는 꾸준함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꾸준함이 가능하게 하는 연료는 그길의 비전 즉 소망인거 같다. 우선 넘어서고 싶어하는 장애물이 있어야 하고 그걸 넘어섰을때의 기쁨을 상상할 수 있어야한다. 그런면에서 우리딸에게 영어교실은 동인을 상실한 기차가 달리다 연료를 발견 못 하고 멈춘 기관차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내 힘으로 안되면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라도 꼭 이루고 싶은 목표, 꿈은 어떻게 발견하게 되는걸까? 둘째로, 그 목표 꿈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채로 하루하루 노력하게 되는 꾸준함은 어디서 오는걸까? 셋째, 그 꾸준함의 길에서 장애물(실력의 부족 등)을 만났을때 헬로우하며 기꺼이 넘어갈 정도로 이뤄내고 싶은 그 목표에 대한 소망은 어떻게 끄집어내는걸까?
난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고싶어서' 시작한 공부의 성과로 현재를 살고있다. 생각해보면 임신 때의 공부는 괴로움이 아니라 어려움을 넘어가는 즐거움이었다고 감히 기억할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리 대단치않은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입덧과 출산 과정에서 그만두고싶었던 순간마다 소망으로 그 어려움을 넘어섰던 경험은 또다른 소망을 낳는다. 지금 육아와 직장생활 속에서 또다른 도전을 해보고싶어지게 하는.
내 딸들에게도 그런 경험을 주입할 수 있을까?그런데 '소망'은 내가 주입할 수 있는 종류일까? 하고싶은 일이 생기면 첫 마음을 잃지 말고 어렵다고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하다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은 내가 주입할 수 있는걸까? 믿음을 갖고 여리고성을 주어진 숫자만큼 돌면 여리고성이 무너질거라는 믿음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나의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꾸준함이 부족했고 그 꾸준함을 끌고갈 수 있는 소망이 부족했던 것 같다. 현재의 나를 끌고가는 동력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하고싶은 일과 하고싶은 일을 해본 소소한 경험들이다. 우리 아이들이 하고싶은 것들이 생기길 바라고,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꾸준함이 있기를 바라고, 어려움을 만나면 친구를 보듯이 어려움을 당연히 여기고 시크하게 넘어가 목표의 열매를 이루며 기쁘게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