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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Nov 21. 2021

11월의 어느 비 오는 밤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

는 것에 대하여 (제목은 30글자 이상 입력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로 끝납니다.


옛날 옛적에, 어느 곳에 소년과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년은 열여덟 살,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습니다. 평범했으나 똑똑하고 매력적인 소년이었고 남들보다 비상하지만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을 줄 아는 겸손한 소녀였습니다. 그들은 보편과 특수를 오가며 이 세상 어딘가에는 100퍼센트 자신과 똑같은 소녀와 소년이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길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됩니다.


"놀랐잖아, 난 여태껏 주욱 너를 찾아다녔단 말이야. 네가 내 말을 믿을지는 몰라도, 넌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라고 소년은 소녀에게 말합니다.


"너야말로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인걸. 너의 모든 것이 내가 상상하고 있던 그대로야. 마치 꿈만 같아"라고 소녀는 소년에게 말합니다.


두 사람은 지하철역 앞 벤치에 앉아 새벽까지 질리지도 않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두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100퍼센트의 상대를 찾고, 그 100퍼센트의 상대가 자신을 찾아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속에도 약간의, 어쩔 수 없는 1퍼센트의 사소한 의심이 파고듭니다. 이처럼 간단하게, 영화처럼 꿈이 실현되어 버려도 좋은 것일까 하는.


대화가 문득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소년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다시 한번만 시험해보자. 진짜로 우리 두 사람이 100퍼센트의 연인이 될 운명이라면, 언젠가 반드시 어디선가 다시 만날 게 틀림없어.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여전한 100퍼센트라면, 그때 바로 결혼하자. 어때?"


"아"라고 소녀가 말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그러니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말해보자면 시험해 볼 필요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100퍼센트의 연인 사이였으니까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우리는 이를 알아챌 방도가 전혀 없었고 상투적인 운명의 파도가 두 사람을 희롱하게 됩니다.


어느 해 가을, 두 사람은 몇 해전부터 유행한 악성 전염병에 걸려 몇 주간 사경을 헤맨 끝에, 옛 기억들을 깡그리 잊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의 머릿속은 갓난아이의 인중을 누른 천사의 손길처럼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명하고 참을성 있는 소년, 소녀였기 때문에 몇 번의 경험 끝에 다시 새로운 지식과 감정을 터득하여 훌륭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교하게 엑셀 파일을 작성할 줄 알았고 잠시간 필름이 끊기는 술자리 후의 아침에도 사소한 업무와 전세자금 대출을 동시에 더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5퍼센트의 연애나, 75퍼센트의 연애, 85퍼센트의 연애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소년은 스물여덟 살이 되었고, 소녀는 스물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쏜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11월의 어느 비 오는 밤, 소년은 퇴근 후 싸구려 프랜차이즈 커피를 마시기 위해 회사 앞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해 가고, 소녀는 퀵 서비스를 받기 위해 같은 길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갑니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스쳐 지나갑니다. 잃어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순간 비춥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란 말이야.

그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남자아이야.


그러나 그들의 빛은 너무나도 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10년 전만큼 맑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그냥 말없이 서로를 스쳐지나, 그대로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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