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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Feb 19. 2022

깻잎 한 장 못 떼주는 속 좁은 녀석들은 연애하지 마라

반박 안 받음

자, 근래 또 하나의 재미난 논쟁거리가 생겼다. 바로 '깻잎 논쟁'이다. 이 논란을 일찌감치 알고 있던 분들도 계실 것이다. 과거 이무송-노사연 부부의 논박으로 유명했던 썰이니까. 다만 2022년 현재, 갑작스레 이 깻잎 논쟁이 또다시 대두된 점은 너무나 흥미롭다. 오늘의 [바다의 편린]은 이 깻잎 논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선 깻잎 논쟁에 대해 알아보자.


나, 내 애인 혹은 배우자가 내 동성 지인/친구와 함께 식사 중인 상황이다. 상대편이 깻잎을 집으려다 두 장이 붙어있어 내 애인이나 배우자가 그것을 떼어준다면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느낄 것 같은가?



내가 이 문제를 맞닥트렸을 때, 대체 어떤 점에서 논란이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고로 나는 ENFJ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 심지어 나는 이런 식으로 가벼운 호의를 아무렇지 않게 베풀어 온 사람이다. 당연한 매너인데 뭐가 이렇게 호들갑인가 싶어 내 개인 인스타그램을 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47:53. 아슬아슬하게 나와 같은 의견을 공유하는 지인이 더 많았다. 잉? 이게 그렇게 치열할 논제라고?


이 논란이 크게 불타오르고 유명 연예인과 셀럽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재미난 기출 변형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깻잎을 두 장 이상 집어 먹는 것은 상도덕을 어기는 것이니 잡아줘야 한다, 깻잎 말고 진미채를 먹어라 따위의 것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꽤 많은 사람들이 이 '깻잎을 잡아 주는' 아주 단순한 액션에 의심과 분노, 좌절감을 느낀다는 상황이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지 이해해보고자 관련 내용들을 열심히 뒤져봤다. 크게 두 가지 뼈대를 가진 주장으로 좁힐 수 있을 것 같다.


1. 그걸 왜 '굳이' 잡아줘? 내 친구한테 호감이 있는 거 아니야?
2. 나한테는 해주지 않은 매너를 '갑자기' 여기서 한다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기준에서는 아주 빡치는 궤변이다. 아! 이래서 논란이 되는 주제구나! 자, 지금부터는 깻잎을 잡아주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나의 변명이다.


1. 그걸 '굳이' 못 잡아줄 이유는 뭔데? 낑낑대는 사람을 도와주는 게 어떻게 호감으로 귀결되는 거지?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힘들게 끌고 가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면 내가 그 할머니에게 호감을 가진 거야? 우리는 자라오면서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게 '당연한' 매너라고 배웠는데!


1번 답변에 대한 반박을 물론 예상하고 있다. (아마 내 입장에서는 어떤 논리를 펼쳐도 개소리로 들릴 테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자. 과연 이 식사자리는 누가 만들었는가. 혹여나 내가 먼저 제안한 자리라면 일견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매우 높은 확률로 아닐 것이다. 애초에 '내 친구에게 호감'을 가진 것 같다고 의심하는 정황이 생길 정도의 관계라면 그런 자리는 성사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그냥 당신이 '어떤 모종의 이유'로 그 상황이 언짢을 뿐이다!



그럼 이 모종의 이유는 무엇일까. 큰 틀에서 열등감(발끈하는 여러분들의 얼굴이 벌써 그려진다.)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마도! 당신의 친구가 당신보다 예쁘거나 잘생겼다는 것을 혹은 더 뛰어난 무언가를 적나라하게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를 열등감이라는 비하적 표현으로 쏘아붙이는 이유는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에 내 연인에 대한 신의를 쉽게 저버렸기 때문이다. 고작 깻잎 하나 잡아주는 행동 때문에 내 반쪽을 의심해?


그렇다면 일맥상통하게 2번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겠다.


2. 내가 '갑자기' 여기서 이런 매너를 보였다고? 설령 내가 당신이 편해져서 깻잎을 잡아주는 사소한 매너를 건네지 않았다고 치자. 그러나 아주 중요한 순간에 내가 건넨 '당연한' 매너들은 왜 깡그리 잊어버렸을까? 너를 데리러 가고, 데려다주고, 매일 아침 무엇을 먹었고, 매일 밤 어떤 하루를 보냈는 지를 확인하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내 '무거운' 매너들은?


결론이 나왔다. 당신들은 깻잎 한 장 잡아주는 걸 용인하지 못하는 속 좁은 찌질이들인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해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이고 못난 사람들이다. 제발 이 치열한 연애 시장에서 영영 떠나거나 끼리끼리 만나길 바란다. 반박 시 당신의 말도 맞다.




차라리 '새우 논쟁'을 통한 반박이 더 신빙성 있다. 마찬가지의 상황에서 깻잎 -> 새우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새우를 까는 행위 자체가 깻잎을 잡아주는 것보다 더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내가 보는 앞에서 상대방의 새우를 까주는 것은 명백하게 플러팅이다. 누구나 새우를 까는 것을 귀찮아하니까! 물론 강하늘의 답변이라는 아주 멋들어진 반례(새우 뽀뽀)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AbzGvmkRjM

강하늘 새우뽀뽀


그렇다면 행위 자체의 문제인가? 이 관점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또 그건 아닌 거 같다. 당연하게 희생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새우를 까지 못해 그냥 머리 째 씹어먹는 사람이지만, 새우를 까주는 사람들에게 딱히 큰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새우를 까주면 플러스알파 값이 매겨지는 것일 뿐이지. 오히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이 그런 호의를 건네면 거절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의 상황을 가정해보자. 나는 연인에 한정해서 질투심이 아주 아주 아주 많은 사람이다. 내 여자 친구가 내 절친인 J의 깻잎을 잡아준다? 그런데 묘한 기류가 흐르고 둘이 눈이 마주치는 게 느껴진다? 아, 잠시만. 개빡치는데? 이 연놈들을 쌍으로 찢어 죽여야겠다. 역지사지를 해보니 알겠다! 깻잎을 잡아 주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아, 아니네. 나는 그런 상황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여자 친구를 절대 친구들과 함께 만나지 않지! 다행이다. 내 논리는 보존되었다. 나는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다! 당신 같은 쿨찐들과 나는 다르다. 나는 '그냥 찌질이'일뿐이다!


깻잎을 잡아주는 것에 열 받을 이유가 없다! 애초에 그 자리를 만든 건 나니까! 그 상황에 화를 느낄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깻잎을 금지 음식으로 지정하길 바란다. 남들이 열심히 젓가락으로 깻잎을 떼어내고 있을 때 캣닢을 씹어먹고 있길 바란다. 하하하. 논박 끝.





그 와중에 며칠 전 방송한 <유퀴즈>의 기사를 읽었다.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김대수 교수가 출연해 뇌과학적으로 깻잎을 잡아주는 행위는 완전한 잘못이라는 내용이었다. 저명한 교수라길래 쫄아서 헐레벌떡 읽었다. 요약하자면 젓가락질은 뇌과학적으로 아주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기에 상대방에게 몰입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뭔 개소리인가! 예술대 학사 출신이지만 한 마디로 반박하겠다. 젓가락질 잘못하면 밥 잘 못 먹어요~! 우리는 고도의 집중력이 떨어진 사람을 도와주는 배려의 집중력을 가진 사람이다.


아, 여기에 나와 같은 논지를 견지하는 국민 MC 유재석이 "호의는 본능이다!"라며 동일하게 반박했다. (역시 '국민' 접두사는 아무한테나 붙는 게 아니다. 역시 킹갓제너럴뚝!) 여기에 김대수 교수는 “3차원 깻잎이 2차원으로 완전히 붙어있다. 뗀 깻잎을 상대방이 먹었다. 그럼 다른 쪽은 내가 잡고 있기 때문에 먹어야 한다. 그걸 내가 먹었다. 그럼 운명적으로 붙어있던 깻잎을 한 장은 그분이 드시고 한 장은 내가 먹었다는 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 머릿속에 바로 그림이 그려진다. 맞네. 내가 잡아주면, 잡아준 쪽은 내가 먹는 것도 본능이지. 사랑도 과학이니까. 이래서 똑똑한 사람들이 싫어.



결국 해석의 문제다. 앞서 말한 새우 논쟁을 넘어 롱 패딩 논쟁까지. 현시대 우리는 사랑은 물론 감정표현에 있어서도 아직도 한참이나 어리고 서툴다는 것을 격렬하게 느낀다. 그러나 나는 이 21세기 예송논쟁인 깻잎 논쟁이 어느 장르든 본인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는 현시대 사회 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멀티 페르소나가 너무나 당연해진 시대에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 혹은 되려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여러 사회적 가면을 쓰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후죽순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만들기 시작했고 본인의 이름, 나이 뒤에 MBTI로 자기를 소개하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호의에 한 발자국 가까워질 것인가. 사랑이란 협소 범위 내의 온전한 내 것(절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차이는 깻잎 한 장 정도지만)에만 집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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