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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pr 24. 2022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

난 너를 사랑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진 않아

I에게 사랑한다고 처음 말했던 날, 그녀가 쭈뼛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사랑까지는 아닌 거 같아...."


나 또한 가볍게 던진 말은 아니었으나 돌아온 무거운 답변은 당시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랑까진 아니'라니. 그럼 너는 나를 지금까지 왜 만나고 있었던 거야?


시간이 훨씬 많이 지나고 나서야 I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어쩌면 그녀의 일부분이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잔인하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면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처럼 보였다. 호감에서 시작한 우리 관계가 '사랑'이라는 완전무결한 정의에 반드시 도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여러 번의 연애를 통해 알았으니까. 결혼이라는 사회가 정의한 최종 골인 지점에 닿지 않는다면 아련하게 흩어질 고백이니까. 그것은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 회피형 인간의 편린이기도 했다. 나는 두려웠다. 그 끝에 결국 다다르지 못할 우리의 불확실한 미래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내 사랑은 전달되고 있다 믿었던 오착도 있다. 내가 건네는 메시지 몇 줄과 비언어적 표현들, 어깨에 손을 두르는 행동 따위가 '사랑'이라는 한국말로 뱉기 부끄러운 고백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믿었다. 탄로 난 내 마음을 사랑이라는 재미없고 뻔한 표현보다 훨씬 로맨틱하게 포장하는 수단이라 여겼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상투적인 투정에 우회적으로 반박했다. 그럼 벙어리들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



진실성의 문제도 있었다. 어느 면면마다, 순간마다 너무나 사랑스러워지는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가감 없이 뱉다 보니 되려 클라이맥스의 내 진정성은 늘 훼손되기 마련이었다. 내가 간신히 용기를 낸 말을 가볍게 흘려듣거나 진짜 사랑하는 게 맞냐고 반문하는 당신들에게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 언제는 자주 표현하라고 했으면서. 왜 당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언제나 동일했던 내 사랑의 무게도 기울임이 달랐을까.


"사랑해"


음성과 텍스트로 이 말이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이기적인 마음이 약간씩 있다. 우리가 굳이 횟수를 따져가며 이 말의 빈도수를 시비 삼아 싸우는 수많은 다툼만 돌아봐도 그렇다. 어쩔 땐 내가 더 많이, 어쩔 땐 네가 더 자주 말하지 않았다며 통계를 따질 이유가 전혀 없는 감정에도 이런 의문이 비집고 들어온다.


'내가 더 사랑하는 거 같은데? 그건 뭔가 싫어'




사랑이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가장 가까운 연인관계에서 마저도 이 말은 아껴지는 것일까. 어느 누군가는 시간의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정식으로 만난 지 일주일밖에 안되었는데 어떻게 서로를 벌써 '사랑'할 수 있어? 그건 거짓말 아니야? 난 아직 너를 '좋아'하는 정도야. 아, 또 나만. 난 너한테 그 좋아함을 고백하기 전까지 마주한 수백 번의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열심히 포착하고 수집했는데.



그 시간의 힘이 진심을 만든대. 당신에게 억지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이 관계가 아직 사랑이 아니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미래의 우리가 서로의 권태에 지쳤을 때쯤, 너는 절규하듯 나에게 말할 것이다. (절대 성급한 일반화라 넘겨짚는다고 말하지 말라.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뿐 온몸으로 이해하고 있다.)


"왜 너는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


그 순간 나는 '변한 게' 된다. 내가 앞서 전달했던 수천수만 번의 사랑은 일순간 무용해진다. 서로를 만지고 향을 맡고 오롯이 느낀 순간들이 단박에 거짓으로 둔갑한다. 사랑해라는 말 하나 때문에 맞잡은 손바닥이 허무하게 뒤집어진다. 확실한 건 그때 변명처럼 쏟아내는 사랑의 말들은 어떤 논리로 무장하든 반박이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사랑한다고 말 만하지 않은 행위 자체가 분명한 부정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군다.



익숙함이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다. 내가 입 밖으로 내뱉었던 사랑의 말이 가벼운 무게를 지닌 것 같다고 말한 초반의 너를 까맣게 잊은 채, 익숙함이라는 당연한 변화 앞에 사랑이라는 가장 중요한 대전제가 뒷전으로 밀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수 가지의 수단이 분명한 증거로 남아있음에도 말이다. 단지 너의 마음에 닿지 않았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로.




그 순간이 닥치게 되면 '원래'라는 말이 비열한 힘을 얻기 시작했다. 너는 원래 그러지 않았어. 우리는 원래 안 그랬어. 나는 원래 그랬어. 이제는 서로를 편하게 여기고 있어. 설레지 않아. 나를 사랑하지 않아. 조금만 멀찍이 떨어져 관조해도 철없음이 당연한 이 행동들이 어이없는 당위를 얻는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외쳐봐도 벽과 대화하는 느낌이다. 차라리 벽이었다면 쾅쾅 두들겼을 텐데.


"그럼 너는 왜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하지 않는데?"는 가장 나쁜 결말을 만드는 이별의 말이 된다. 순서가 전혀 중요한 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네가 먼저 하면 안 되는 거야?"는 마침표를 찍는 말이다. 누구 하나 접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도돌이표를 반복하다 먼저 지친 사람이 이별을 고하는 최악의 수를 두는 상황이다. 답답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말' 따위에 묶여야만 하는가.



사랑해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사랑은 어쩐지 계속 사랑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삶을 산다. 아낌없이 쏟아붓는 감정도 회수하고픈 마음이 드는 게 오히려 인간적인 모습이기 때문일까. 내가 엎질러놓은 말들이 아까울 때가 종종 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일까? 마음속의 우물 안에 빠져 곰곰이 고민하다 보면 눈에 담긴 온 세상이 출렁거릴 때가 있다. 나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나를 사랑한다고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 나도 얼른 그 마음을 따라잡으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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