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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May 28. 2022

당신은 학폭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두 낫 디스텁 마이 에어리어

요즘 들어 많은 의문이 든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교폭력에 분개하는 것일까. 그 자체가 나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폭력은 당연히 나쁘다. 그러나 남이 남에게 행한 폭력에 인성/공감을 넘어선 과도한 비난/동정을 왜 자격도 없는 '우리가' 그들에게 함부로 쏟아붓느냐는 말이다. 솔직히 말해 A가 B를 때린 것이 당신의 삶에 어떤 직접적 연관이 있는가. A는 향후 잠재적 범죄자가 될 것이니 그 싹을 미리 자르자고?


그게 헛소리라는 점은 우리 모두가 안다. 마치 AV를 많이 보면 강간률이 높아지고 FPS 게임을 많이 하면 살인율이 높아진다는 어설픈 통계처럼. 폭력은 이전에 내가 쓴 <인간은 지배 없이 살 수 있는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에게 내재된 당연한 DNA이며 도처에 널려있다. 지금 당장 신인 걸그룹 르세라핌의 멤버인 김가람의 과거 행적에 분노하는 당신도 내일 아침이면 찐따와 오타쿠, 직장상사를 향해 상식 선으로는 입에 담지도 못할 욕과 험담을 아무렇지 않게 퍼부어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도 폭력의 가해자인가?



분명 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왜? 글쎄. 나도 모르겠다. '나는 선인(善人)이니까'라는 당연한 전제를 깔고 우리는 대법관이 된 것 마냥 물어뜯을 특정 대상만 있다면 거침없이 사이버 판사봉을 휘두른다. 특히 인터넷 상에서 우리는 유독 순전 무결해지기에 그에 반하는 사례를 보이는 이들에게 당연하다는 듯 훈계와 징벌을 내린다. 그렇다. 우리가 폭력을 대하는 태도는 절대 일관적이지 않다. 다분히 이기적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범죄자에게 "그들은 맞아도/죽어도 싸"란 말을 한다. 왕따를 괴롭힌 일진들에게는 사형을 내려도 무방하다 말한다. 그들은 가히 처맞을 만하며 물리적 거세를 이행할 만하다 말한다. 등줄기 어딘가를 서늘하게 만드는 검은 변명이 떠오르지 않는가? 폭력의 가해자는 대체적으로 위와 동일하게 말한다. "그가 저를 꼬셨어요. 난 그를 성폭행한 게 아니에요. 우리는 합의 하에 사랑을 나눈 거예요", "걔는 맞아도 싸요. 학교에서 이상한 애니메이션만 본다니깐요? 음침해."


우리가 폭력을 대하는 논리는 학교폭력을 행하는 이들의 알고리즘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그저 당연한 약육강식의 시스템 안에 속해 있는 또 다른 동물군이며 다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의식 과잉과 어설픈 성선설이 뒤섞인 불완전한 존재에 가까울 뿐이다. 가장 최근에 내가 뜨악한 폭력의 사례는 아카데미 시상식 이슈다. 크리스 락은 남우주연상 수상이 유력한 윌 스미스에게 그의 아내를 향한 농을 던졌고 윌 스미스는 이를 폭력으로 화답했다. 그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지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맞을만했네 ㅋㅋㅋㅋㅋㅋ"라는 반응을 보였다. 왜? 말이라도 가족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지극히 동아시아적 사고관 때문에? 실제로 미국에서 처벌은 윌 스미스만 받았다. 그는 향후 10년간 오스카에 참여할 수 없다.



혹시 정도의 차이는 아닐까? 우리가 행하는 일상의 폭력은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나 일진이 가하는 학교폭력은 향후 PTSD와 주변인에 대한 2차가해로 이어지니 더 큰 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빈도수는 또 어떠한가. 한 번 때린 것보다 열 번 때린 것이 더 나쁜가? 그것도 아니라면 세게 한 번 때린 것이 살살 열 번 때린 것보다 더 나쁠 수도 있지 않을까? 폭력은 통계로 재단할 수 없다. 출소한 조두순의 집을 찾아가 둔기로 그를 가격한 인간은 과연 이 사회의 영웅인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인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학교폭력에 열을 내는 것이 굴욕적인 자기반성의 의미라고 더 믿고 싶다. 우리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적이 있다. 더 정확하게 우리는 폭력의 중독성과 연민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남을 무너뜨리며 성취감을 느끼고 동시에 미안함을 느꼈던 순간이 분명하게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학교폭력을 행사한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가슴 한편으로 안도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나는 저들과 같은 나쁜 무리에 속해있지 않는다 믿는 비열한 안도감. 사회적으로 당연한 질타를 받을 그룹을 향한 맹목적인 비난을 통해 얻는 어정쩡한 소속감. 그리고 권선징악이라는 너무나도 익숙한 교육 환경에 종속된 나머지 본인을 악인으로 가정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무너진 형평성. 우리는 분명 이 사회의 소시민에 불과하나 악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숭고한 연대감을 가지고 있다 여긴다. <어벤져스>의 영향인가.



다만 나는 그 폭력의 현장에서 조용히 방관하고 있었던 대다수의 겁쟁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폭력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아무렇지 않게 '담당 일진'을 찾는 요즘을 보라. 당신은 그저 알파와 오메가 사이 어느 즈음에 위치한 보통의 단역에 불과하다. 나는 엮이고 싶지도 않으니 최소한의 선을 지키고 있다는 변명은 밀라. 우리에게 폭력은 비난과 두둔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앞으로 행해야 할 유일한 행동은 '폭력은 나쁘다'라는 당연한 사회적 합의 아래 스스로의 모순을 끊임없이 찾고,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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