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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12. 2022

헤어질 결심

아무 말 없이 나를 떠나세요

남들과 함께 있을 때도 외롭다고 느낀 순간부터 마음의 면적을 좁혀왔다. 노출면이 많다는 건 누가 봐도 장점보단 단점이 많았으니까. 넓고 얕은 관계 안에 마냥 좋은 사람이라는 남루한 평가를 받아내는 건 허우대만 좋았다. 가장 중대한 순간 강력하게 필요한 사람은 그 풀장 안에선 찾을 수 없었고 그렇게 아주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아니, 내가 멀리멀리 떠밀려 내려갔다.


나는 당신께 가장 아끼는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선한 마음을 오래전부터 이해하고 있었기에 애정도 골고루 나눠주지 못했다. 오늘 할당된 내 감정을 동일한 비율로 잘라내 여러 사람에게 분배하는 것보다 단 한 사람에게만 몰두하는 것, 그게 더 빛나는 가치라 믿었다. 미안하지만 수신자의 의사 여부는 내 알 바 아니었다. 나의 밀물 같은 진심을 한꺼번에 송달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만큼 충만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나만의 반짝 친구 스티커를 배부했다. 당신은 대개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영민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충분했을 사람이라 더 특별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실없어 보이는 농담 안에 흠뻑 젖은 말을 감췄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엔 꾹꾹 눌러 모은 마른 문장을 장우산 대신 전했다. 나에게 오래 기억된다는 건 그런 숨겨진 마음 같았다. 구체적으로 묘사할수록 진심은 꼭 2퍼센트씩 미달된 느낌이라.


그런 당신과의 이별은 내 부피를 한없이 줄어들게 한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떠났으면 하는 사람은 피로처럼 착 달라붙는 반면 내 곁을 절대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은 바람길을 만난다. 배웅의 손길과 함께 더 높이 날아가라 말하며 나는 풀썩 내려앉는다. 속으로 당신의 과거 또한 감히, 과감히 애정 하고자 했는데 미래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헤어짐은 자연의 이치지만 그게 왜 하필 지금인 거야.


뭐든 일단 경험하란 말은 틀렸다. 헤어진다는 건 마주할수록 다시는 접촉하고 싶지 않은 정동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별에 익숙해져 본 적이 없다. 결심을 세운 적도 없다. 작별인사를 회피하고 다신 너 같은 애들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 테야 지켜지지도 않을 어리석은 약속만 다시금 곱씹는다. 내가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당신의 사랑을 갈급하고 있었다. 눈물이 찔끔찔끔 쏟아질 것 같은 날엔 꼭 비가 올 듯 말듯하다.


안녕은 인사할 때나 쓰는 말이었으면. 당신이 지척에 있을 때는 그 사소한 것조차 부끄러워했는데 안녕을 빌어야 할 때가 되면 어떻게든 마무리 짓고자 묵음 처리된 용기를 있는 힘껏 낸다. 안녕, 잘 가. (이제부터 상실할 시간이야.) 그러고 나면 웃기게도 슬픔이 생기를 띠고 우리를 본다. 그래, 너/오빠/찬우도 잘 지내. 종종 보자는 말은 둘 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보지 못할 거란 걸 아니까.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냥 아주 먼 외국으로 떠났으면. 그건 그거대로 또 아쉽겠지만 적어도 6000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는 생각에 헤어짐도 작게나마 납득할 수 있을 텐데. 위성전화도 닿지 않는, 구글어스조차 어디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 만큼 멀고 넓은 곳으로 이주했다 여기자 결심한다. 마음만 먹으면 마주칠 수 있는 서울 어딘가에 당신이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 날 갑자기 번개처럼 우리 집 문을 비집고 들어올게 뻔하니까.


무수히 많은 대화가 만든 무구한 마음과 당연한 서사가 있다. 성인의 시간은 더께만 가득한 듯싶어도 아닌 경우가 분명하게 있다는 걸 당신이 증명해냈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게 한없는 애정을 비죽비죽 부어댔다. 비록 그 찰나의 표현들이 잘 닿지는 못한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먼발치에서만 당신의 행복을 바랄 것이다. 자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근사한 당신께 보내는 마지막 말이 여전히 근사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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