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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Oct 19. 2024

지느러미

시시콜콜하게 세상을 냅다 미워하기!

난 미운게 많다. 낯선 건 일단 미워하고 본다. 국에 들어간 초면의 채소를 미워하고 생선 비린내를 풍기는 지하철 옆자리 할머니를 미워한다. 부업이란 말을 미워하고 내 귀에 연결된 블루투스 이어폰이 다른 사람의 것과 충돌해 끊기는 취약한 상황을 미워한다. 내가 앉고 싶은 좌석에서 먼 곳을 안내하는 음식점을 미워하고 그럼에도 거기가 무척 맛있어 자주 찾는 나의 이중성을 미워한다. 어깨를 비키지 않는 파렴치한 보행자도 미워하고 거의 대부분의 광고 문자를 극도로 미워한다. 아빠는 내가 매사 불평불만이 많다고 했다.


사람을 우선 미워하고 보면 나의 편협함을 똑바로 주시하게 된다. 쟤는 눈빛이 이상하니까 나쁜 사람일 거야. 그의 눈은 단지 인공눈물을 필요로 할 뿐이었다. 걔는 말을 잘 안 하니까 음침한 사람일 거야. 그녀는 인상보다 단어를 고르는 데 신중한 사람일 뿐이었다. 항상 우리를 기다리는 시간을 참지 못한 건 나뿐이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라도 그랬겠다. 기대치를 낮추는 게 아니라 무작정 기대하는 바를 없애고 남을 대하니 불쑥 애정이 커진 나를 간파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나는 실금 속의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방이 어둑해지면 다시 미움에 대해 꼽아보기 시작한다. 오전 여덟 시 이십오 분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에 여섯 시 반부터 오 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추는 모습이 퍽 미웠기 때문일까. 용건만 간단히 하고 싶은데 길어지는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방금 릴스에서 본 푸바오의 중국 송환 과정을 다룬 뉴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판다 한 마리 떠난다고 우는 사람들이 미운 건 감정적 잣대와 별개인 무심함의 자격지심이다. 세상에 슬퍼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당장 나부터 말이다. 이런 나를 저렇게까지 슬퍼해줄 사람은 몇 명 없다니.


기상하는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간신히 제 시각에 일어나면 십 분 만에 출근 준비를 끝낸다. 덜 잘린 수염을 문지르며 아홉 시를 조금 넘겨 간신히 도착한다. 아무도 늦은 걸 눈치 주진 않지만 내가 지레 따끔해진다. 이렇게 지낸 지 두 달 째다. 오늘은 오전부터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여덟 명이 있으면 그중 최소 두 명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다. 오후에는 세 개의 미팅이 더 기다리고 있다. 각각의 약속에서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무조건 있다는 건 얼마나 지리멸렬하며 일관적인 스케줄인지. 벌써부터 심장이 지끈거린다.


미움이 흡연장으로 뻐끔뻐끔 모인다. 바닥에 침 뱉지 마시오. 표지판이 무색하게 가래를 뱉고 그 옆에는 청소부 아저씨가 묵묵히 끈적함을 쓸고 닦아낸다. 같은 언어를 써도 우리는 서로를 외국인처럼 대하는 것만 같다. 하얀 연기가 응집해 부정의 구름을 만든다. 이 흡연장, 불법 건축물이라 2월에 철거한대요. 옆 회사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를 엿들었다. 여기선 온갖 가십들이 아가미를 통해 내뿜어진다. 중독이자 잠깐의 시간이 필요해서 온 건데 미움은 축적돼서 난류의 층을 쌓는다. 배 나온 아저씨가 된다는 건 이런 걸지도 모른다.


미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눈웃음을 마주한다. 저 사람은 뭐가 그리 좋다고 매번 사무실에서 싱글벙글할까. 괜히 밉다가도 그 사람 옆에만 있게 된다. 그녀는 내가 당신의 SNS를 보고 있는지 모를 거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한 번 일러줬었는데 기억을 못 할 거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몹시 그리웠던 유럽 공기를 맡았다는 이야기가 나랑 너무 달라서 그랬다. 사람이 정착하는 마음은 이토록 같은데 떠나는 겉은 변덕스럽구나. 다섯 살은 어린 그녀에게 휴가의 의미를 배웠다. 어떤 결핍과 장애가 있었다는 건 그보다 훨씬 이후에 알게 됐다.


귀가하면 층간소음이 나를 괴롭힌다. 닭장 같은 한국의 원룸이 다 그렇지만, 생활소음의 반경을 넘어선 충격음은 뇌와 가슴을 울린다. 시공단가의 변화와 공중도덕에 대한 배움의 고하를 탓하게 되지만 그건 마음의 일시적 방편일 뿐이다. 넓고 조용한 집에서 유영하는 장면을 그린다. 7억 정도는 있어야 할 텐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만한 돈이 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30대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짐짓 성장의 크기를 재보듯 눈을 감아보지만 그 순간 또 쿵, 소리가 수직으로 곤두박질친다. 아, 진짜 싫다.


미움에서 아주 멀리 도망가는 상상을 유튜브에서만 이룬다. 그러고 보니 난 인플루언서란 말도 참 미워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영향을 받은 게 없는데 뭘. 여러분은 지금부터 도파민 콘텐츠 프로바이더다. 그렇게 생각하면 동종업계 직장인 같아서 조금 안쓰럽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카운트가 있다는 건 꽤 좋겠지? 조회수 1에 몇 원이라고 계산하는 건 참 간편하다. 침을 뱉는 옆 회사 사람들처럼 접근한다. 소슬한 안도가 찾아온다. 내일은 또 뭘 미워하게 될까. 아빠의 얼굴이 그려진다. 삶은 좁은 납골함 속 지겨운 더부살이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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