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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Oct 19. 2024

이중 하나는 거짓말

어쩌면 하나가, 어쩌면 거짓말이 아닐지도

난 너의 많은 부분을 안다. 나이를 알고, MBTI를 알고, 전 남자 친구와 얼마나 만났으며 어떤 이유로 헤어졌는지를 알고, 너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의 숫자를 안다. 가장 지키고 싶어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며 너의 강단의 시발점을 알고, 남들에게 한사코 말하지 않는 가족관계를 취기로 알아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십 수개를 알고 가장 싫어하는 몇 개는 더 확실하게 안다. 네 외모의 어떤 부분을 부끄러워하는 지를 우연히 알게 되었고 어느 부분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지를 의식적으로 알았다. 너의 기분을 낫게 하는 화법을 차츰 학습했고 어느덧 자연스럽게 너의 기분을 망치지 않는 스킨십의 범위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내가 너를 모른다고? 그럼 그렇게 많은 조각을 보여주지 말았어야지. 또 네 탓을 슬며시 하게 된다.


난 너의 어떤 부분을 모른다. 부모님의 직업을 모르고, 어떤 책을 읽는지 모르며, 뉴진스의 멤버와 닮은 거 같다는 말이 왜 너를 몸서리치게 하는지 모른다. 인간관계는 파도 같다는 네 탁견의 출처를 모르고, 내 어떤 모습이 너의 미간을 자주 찡그리게 만드는지 모르고 싶다. 윤슬과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부상하는 현상이 왜 흥미로운지 모르겠으며 '지금 가고 있어' 보다 '내가 여기 있어'란 관성이 어떻게 너를 구슬프게 만드는진 더 모르겠다. 그리고 이건 진심인데, 줄어드는 몸무게는 말수만큼 못 믿겠다.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영혼에 상해를 입힌다는 걸 납득했고 없는 싸움도 억지로 만들어 내야 하는 순간의 필요성을 무시하고 싶었다. 근데 내가 너를 모를 수 없다고? 그럼 말문을 막는 덩어리가 되지 말았어야지. 또 내 탓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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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애란의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제목을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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