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우 May 26. 2020

유통기한

썩지 않는 것

사랑의 생물학적 유통기한은 6개월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손잡고 껴안고 키스하는 행위'들은 과학적으로 반년 정도면 질리기 마련이란 거다. 나는 그걸 솔직하게 인정하는 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다만 그런 현상을 빌미로 잘못된 행동에 당위를 부여하는 건 의심할 여지없이 나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나빠지곤 한다.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사랑의 형이상학적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뻔한 걸 알지만 뻔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알 수 없다!"


누군가는 정말로 정신적으로만, 또 누군가는 정말로 육체적으로만 사랑하기도 하며 절대다수의 누군가는 대략 반반이 섞여 끊임없이 혼란스러워하며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든 항목화해 규정하는 걸 좋아하지만 이 논제만큼은 언제나 정의를 내리려다 오히려 더 큰 벽을 마주하곤 한다.


그렇다면 방향을 조금 바꿔 이별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모두 이별을 겪는다. 이별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이별은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인과관계가 아니니까. 하지만 '연인 간의 사랑'으로 이별의 범위를 한정한다면 평균적인 이별의 유통기한 정도는 예측해 볼 수 있겠다. 아마도 둘 혹은 그 이상이 '연인관계를 유지하던 시간' 정도와 엇비슷한 시간일 것이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관계를 지속한 시간의 두 배' 정도가 이별의 형이상학적 유통기한의 최솟값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 경우엔 교제한 기간의 두 배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그럭저럭 그 대상을 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루하지만 결국 '영원함'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는 사랑이 영원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인정하려 들진 않지만 끊임없이 상대방을 의심하고 시험한다. 아주 못돼먹은 심보다. 이런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침 하버드 대학에서 영원한 사랑에 대한 연구를 실시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그 연구에 의하면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며, 그 비밀은 오로지 하나뿐이라고 밝혔다. 상대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즉, 사랑을 지속하는 비밀은 각자가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의 분위기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영원한 사랑은 섣부른 판단 없이 상대를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아, 찾았다! 내가 영원히 사랑하지 못한 이유를.



 

유통기한이 지난 먹거리들은 복통을 유발한다. 상했으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 정말 슬프고 무서운 이유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게 나를 아프게 할지 아닐지는 섭취하기 전까진, 소화되기 전까진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한입쯤은 괜찮을 수도.


나는 오늘도 몇 개의 기억을 좀 더 보존해보려 냉장고를 열었다. 한쪽에는 이전부터 쌓아놓은 기억의 유제품들이 쥐 죽은 듯이 놓여있다. 다행히 아직까진 악취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걸 먹으면 분명 아플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그냥 보관만 해 놓는다. 차가운 곳에 꽁꽁. 아무도 모르게.

매거진의 이전글 그들이 사랑했던 여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