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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May 30. 2020

그들이 사랑했던 여자들

순서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9. 


어느 날 잠결에 들은 그녀의 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깼다. 군 복무 시절, 딱 한 번 들어 봤던 오소리가 죽을 때 내는 비명소리보다 더 소름 끼치고 구슬픈 소리였다. 아빠를 찾는 악몽을 꿨다고 중얼거리는 그녀를 발가벗은 몸으로 다독였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 


나는 다시 잠에 들지 못했으나 그녀는 새근새근 잘도 잤다. 그녀가 가끔 자신의 불행을 대가로 내 애정을 사려했던 정황들이 그 장면과 오버랩된 정확히 그 순간에서야 앞으로도 내가 이 아이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끈적한 무력감을 인정했다. 얘랑 결혼까지는 못하겠네. 내가 나쁜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애초에 다른 행복을 누리고 온 사람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편모 가정임을 티 내지 않았던 그녀의 무의식에서 발현된 잠꼬대가 하필이면 그때 무거운 확신을 만들었다. 


죄의식이 들었지만 그보다 더한 성욕 때문에 잠에서 덜 깬 그녀를 어르며 아침 녘에 한 번 더 했다. 그녀는 본인의 잠꼬대를 기억하지 못했고 멋쩍어했다. 우리는 4개월을 조금 더 만나다 헤어졌다.


1. 


씀씀이와 관련된 마찰이 생길 때마다 S는 항상 표독스러운 표정과 함께 "너 우리 집 무시해? 우리 아빠도 외제차 타는데?"라는 말을 뒤따라 붙였다. 언젠가 내가 지나가듯이 아빠가 차를 벤츠로 바꿨다고 이야기한 이후부터다. 아빠는 본인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공직생활을 1년여 남겨둔 시점에서야 고심 끝에 산, 공무원은 타면 손가락질받는다는, E클래스와 06년식 싼타페, 10년을 훨씬 넘긴 낡은 건물이지만 어쨌든 45평형인 대단지 아파트 한 채를 소유했다는 이유로 국가장학금이라곤 일체 받아 보지 못한, 그러나 가난한 그의 아들이 철없이 만난 전액 장학생이지만 싸구려 빌라에 사는 여자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밥값 한 번 쉽사리 내지 않던 그녀는 연애 과정에서 금전적인 다툼이 개입할 때마다 본인의 집안이 은근한 알부자임을 어필했고 어떻게든 중산층인 내 부모님의 급을 낮추려 들었다. 끝내는 50대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우리 엄마에게마저도 패배의식을 느꼈고 어련히 그녀의 편을 들겠거니 했던 나조차도 이별을 예감한 시점에서야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3. 


헤어진 지 두 달이 넘은 나와 마찬가지의 그녀를 위해 친구가 자리를 만들었다. 둘 다, 평소 자기는 소개를 받는 타입은 아니라고, 서로 묻지도 않은 변명을 얇은 방패로 내세웠다. 소주 몇 잔과 뼈 없는 닭발 몇 조각으로 조심스레 간만 보던 귀는 예민하고 입은 무거운 저녁, 자연스럽게 물꼬가 튼 각자의 최근 사랑들에 대한 실패담 덕분에 우리의 밀도는 점차 높아졌다. 비슷한 이별 두 개가 만나자 우리의 명백한 실패는 잠시나마 기억과 사별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내게 마음이 있겠거니 했던 그녀가 그날로부터 불과 2주도 되지 않은 시기에 새로운 남자 친구와 함께 활짝 웃는 사진을 포스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8.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인생에 둘도 없는 배부른 시기가 찾아온다. 직간접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던 이성이 셋이나 있었고 각자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찾아왔으면 좋았겠다는 꼴사나운 고민으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사랑도 파도처럼 한 번에 밀려오는구나. 썰물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무너지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지.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양다리를 걸칠 정도의 깜냥도 없었으니까. 고심 끝에 1순위를 결정했다. 누가 자취하고 잘 취하는 여자가 최고라고 했는가. 함께 술을 진탕 퍼마시고 찾아간 그녀의 집은 깜짝 놀랄 정도로 더러웠다. 돌이켜보면 헷갈리는 기억이지만, 그 지저분함 때문이었을까? 왠지 모르게 그곳에서 섹스를 하면 두 가지 의미에서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위험신호가 온몸을 지배해버렸기 때문에 술기운에 잠이 든 짧은 치마의 그녀를 코앞에 두고도 이불만 덮어준 채 그대로 집으로 달아날 수 있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인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그날 이후로 급격하게 멀어졌다. 나는 곧바로 2순위를 만났다.


11.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글을 쓰는 걸 싫어한다. 물론 꼭 써야 한다면 정말 잘 쓸 자신은 있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내가 아니게 되는 그 순간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대개의 여자 친구들은 억지로 쓴 내 편지들을 참 좋아했고 심지어 크게 감동받아했기에 기념일 언저리에는 늘 은근한 강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걸 쓰기 위해 퍼질러 앉아 허울 좋은 단어만 골라내고 있던 나는 '사랑하니 괜찮다'라고 수도 없이 주문을 걸었지만, 사실은 그 몇 장 안 되는 아웃풋과 교환하기 위해 소모되는 정서적인 스트레스가 너무나 큰 나머지 그 낙차를 메우기 위한 회복 과정이 꽤나 힘겨웠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심을 담아 쓴 어떤 연애편지는 해소하듯 가벼웠다. 그러나 돌아온 답장은 프레임 속에 담긴 기나긴 거절의 글이었다. 털털한 그녀가 아마도 나를 배려했기에 우리는 잠시간 멀어졌고 그녀의 의도와 달리 그때의 내 정신 상태는 멀어진 육체적, 정신적 거리 때문에 더욱더 황폐해져만 갔다. 매일 새벽마다 답이 없는 SNS 메시지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고 한 마디 더 건네볼까, 하다 그만두곤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나쁜 습관에 딱히 후회는 없다.


몇 년이 지나 어쩌다 단둘이서 보게 된 식사 자리에서도 그때의 에피소드는 이미 약속이라도 된 듯 없는 기억으로 취급됐고 나는 태연한 척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 자랑을 하며 은근슬쩍 그녀가 후회하길 바랐다. 또 몇 년 뒤, 그녀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나름의 복수를 했고 얕은 생채기를 입은 나를 보니 그 무렵 그녀도 비슷한 수준의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본다.


6.


못생긴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B는 못생겼다. 한 번은 고깃집에서 같이 고기를 먹다 가게에 들어온 내 동창들이 혹시라도 나를 봤을까 싶어 황급히 고개를 숙였던 적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여자들이 봐줄 만하지 못한 남자와 사귀지 않는 이유를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사실 그 연애는 당시 내가 좋아했던 U에게 술김에 보낸 카톡이 하필이면 새벽까지 쓸데없는 잡담이나 나누는 사이였던 B에게 잘못 불시착했고 말도 안 되는 그녀 혼자만의 뇌내 망상으로 뜬금없는 내 고백은 불과 한 시간 만에 기꺼이 설득력을 얻었기에 시작된 근본 없는 연애였다. 내가 본인을 좋아하는 티가 났다나 뭐라나. 어버버 하며 사과를 하더라도 그날 잘못을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가지치기에 어수룩했던 그때의 나는 미련하게도 '에이 뭐, 그냥 한 번 만나나 보자'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 버렸고 지금까지도 친구들이 박장대소하며 씹어대는 술자리 단골 안주가 되었다.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었지만, 꼬박 1년이 좀 넘게 사귀고서는 나를 위한답시고 이별을 고한 B가 후일 친구를 통해 바람을 피웠음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딱히 미안하지도 않다. 못생긴 게 꼴값 떨기는.


12.


그맘때 심심함에 몸서리치던 우리는 아주 사소한 재미라도 찾기 위해 툭하면 카드 뽑기를 했고 그녀는 노린 것처럼 매번 내 크림색 하나카드만을 뽑아냈다. 한동안, 그러나 거의 매일을 아이스크림 값으로 쓴 내 피 같은 돈 4,800원이 솔직히 좀 아까웠으나 친구들의 왁자지껄한 환호와 괜한 바람을 잡는 분위기 때문에 한껏 으쓱해진 내 '찐특'이 다량의 도파민을 분비했나 보다.


그렇게 계산을 하는 아주 짧은 순간에도 나는 끊임없이 실없는 농담을 던졌고 그녀는 늘 수줍은 미소로 그것을 받았다. 이거 백 프로야. 걔도 너한테 마음 있는 거라니까? 입이 심심한 거짓말쟁이들의 사탕발림에 홀랑 넘어간 나는 매번 딱 슈팅스타 네 개 값 정도의 호감을 쌓고 있다는 확증 편향에 빠졌고 그렇게 내 카드를 뽑아간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내 일상의 유의미한 일부가 되었다(고 착각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의 유니폼에 달린 명찰로 알아낸 특이하고 예쁜 이름 덕분에 손쉽게 그녀의 페이스북 계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경건한 마음으로 친구 요청을 걸었다. 며칠 뒤, 친구 수락은 거절됐고 그 이후로 그녀는 소리 소문 없이 일을 관두고야 말았다. 자니? 자는구나. 그래 잘 자...


7.


4년 전 무더운 여름, 두부김치를 앞에 두고 일곱 명이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로컬 브랜드의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막걸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유독 맛있는 밤 막걸리. 그러나 K 누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딱 두 잔 정도를 마시고 사발을 옆으로 치웠으니깐. 그래도 막걸리 마시는 걸 보니 저 누나도 사람이긴 하네. 난 또 요정인 줄 알았잖아.


회색의 루즈한 반팔 티셔츠를 입은 것과 딱 목젖 밑까지의 기억이 생생하다. 저런 옷은 어디서 샀을까. 아마도 COS겠지? 거기 지금은 되게 별로던데. 


두 달 전, 버스가 신세계 백화점 쪽 정류장에 잠시 정차했을 때, 우연히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K 누나를 봤다. 확실히 멋있는 사람이야. 선글라스는 너무 멋 부리는 아이템 같은데 진짜 잘 어울리네. 클래식 음악은 역시 달라. 나는 아직도 힙합인데 말이야. 내가 다섯 살만 많았어도 어떻게든 번호를 물어봤을 텐데. 아, 이건 힙합이 아닌데 말이야.


2.


남자는 곧 죽어도 예쁜 여자면 장땡이라고 그랬는데. 내 경우에 그 명제는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보정이 조금 필요해 보였다. 대학 시절, 여자인 동기나 후배들과 이상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내가 버릇처럼 했던 말 중 하나는 f(x)의 크리스탈이 왜 '예쁜 얼굴'이라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내 경험적 근거로만 봤을 때 크리스탈은 유독 여자들'만' 선호하는 여자 얼굴이었고 그래서 크리스탈 같은 외모는 캠퍼스에 널리고 널리지 않았느냐(?)는 내 망언에 그녀들은 항상 질색 팔색 했다. 


여하튼 4는 그런 크리스탈과 정말 똑 닮았었고 그래서 내 기준에는 전혀 미인이 아니었으나, 대학의 그녀들은 하나같이 크리스탈을 '존예보스'라고 했으니 객관적인 미의 기준에서 4는 미인이라고 봐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 존예보스 덕분에 내가 낯선 사람과의 스킨십을 아주, 아주, 아주 싫어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4는 통성명을 나눈 지 두 시간밖에 되지 않은 내 손에 깍지를 꼈고 자꾸만 어설픈 신경전을 걸어댔다. 푸는 과정이 복잡한 함수가 아니라 애써 결괏값을 구하고 보니 객관식 란에 존재하지 않는 답만 도출되는 요상한 문제 같은 여자였다. 매우 불쾌한 기분을 느낀 동시에 한 번 하고 싶다는 양가감정이 들었다는 것을 이제와 부정하진 않겠다. 역시 남자는 애 아니면 개 아니면 개새끼다.


4.


H는 스물여덟이었지만 연애경험은 전무했다. 모텔이란 모텔은 죄다 만실이던 연말에 간신히 찾아낸 한 룸카페에서 처음 H와 키스했을 때, 일본 특유의 장르 소설에서나 등장하던 목석 인간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하다가 하루키가 언급된 게 우리 사이의 복선이었나. 


그녀는 <상실의 시대>를 최고로 꼽았고 나는 일부러 <노르웨이의 숲>을 언급했지만, 그녀는 두 작품이 흥행 상의 이유로 제목만 다르게 출판된 동일한 작품인 것까지는 몰랐던 거 같다. 가슴을 만질까 말까 고민하다가 왠지 모르게 매우 싫어할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어정쩡한 자세로 키스만 하다 집에 바래다줬다. 이후 H가 먼저 성관계를 암시하긴 했으나 키스만 할라치면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에 이유모를 암울함을 느꼈고 끝내는 육체적 매력을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상황에까지 도달하게 됐다. 졸업 전시를 준비하느라 바빠진 나와 취업을 위해 외국으로 나서게 된 H는 계약이 만료된 FA 선수와 구단처럼 큰 트러블 없이 자연스럽게 헤어졌고 살면서 처음으로 친구에게 섹스는 하고 헤어지지 그랬냐는 면박을 받았다.


10.


다리를 꼰 채 까딱까딱하는 발에 명품 신발이 신겨져 있던 첫인상이 너무나 강렬했다. 눈에 띄는 미인이었기 때문에 남녀를 불문하고 잠시 동안이나마 시선을 멈추게 하는, 외적으로 굉장한 흡인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아는 사람들은 아는 SNS 인플루언서 같은 사람이었다. 우연히 한 프로젝트의 팀으로 만났지만, 딱히 열성적이진 않았고 예뻤기에 실수도 쉽게 용서가 되는 부류의 사람이라 사적인 눈은 즐겁지만 공적인 팀으로는 좀 짜증 나는 여자였다. 


어느 날은 내 개인 PT 차례가 있었고 나는 그에 매우 능한 사람이었기에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모두가 즐거워할 만한 발표를 마쳤다. PT가 재밌었는지 몇몇 사람들이 내 신상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왔고 그녀 또한 내게 말을 걸었다. 왠지 모르게 두 번 다시 그녀를 볼 일이 없을 것 같아 쓸데없는 이야기나 몇 마디 나누다가 슬쩍 물었다. 근데 그 발렌시아가는 찐이에요? 그녀는 당황했다. 폰트가 좀 의심스럽긴 했어.


5.


내 연애 고백 중 세 번은 성공했고 세 번은 실패했다. 마지막 고백의 처참한 실패 때문에 딱 절반의 성공률. 혹시라도 안정성 있는 이 반반의 확률이 더 낮게 깨지게 되면 향후 연애 시장에서의 내 상품 가치마저 덩달아 떨어지기라도 할까 두려워 이후의 연애는 대부분 여자 쪽에서 먼저 오퍼가 오거나 고백하게끔 유도했다, 는 말을 뒷부분만 엿들은 그녀는 나를 두고 '상남자인 척하는 찌질이'라고 조용히 평가했다. 


아주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졌고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기에 순순히 인정했다.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고 의외로 비슷한 영화 취향 덕에 대화의 코드가 제법 잘 맞았다. 선뜻 보여주었던 그녀의 플레이리스트 상단에 있던 내 취향의 몇몇 음악들 때문에 더 푹 빠져버렸고 그맘때 나는 뒤늦게 비공개로 전환된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이미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컨셉추얼 한 또래의 여자들에 비해 심심했던 그녀를 흠모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고만 믿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착하고 좋은 사람들은 항상 내가 생각하기에 나쁘고 별로인 사람들만 만나던데. 그냥 내가 별로인 사람이었음을 반성하듯 배우게 만든 좋은 사람으로만 남겨두련다. 착한 남자 만나 잘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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