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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n 10. 2020

이름값

예쁜 이름을 찾습니다

객관적으로 내 이름은 예쁜 편에 속한다. 특이한 별명을 만들기에도 그 형태가 마땅하진 않아서 학창 시절, 남학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저질스러운 별명 또한 내 이름에는 붙지 않았다. 기껏해야 느릿한 동물이나 먹거리가 되는 정도였으니 나름 만족한다. 우리 부모님은 내 이름을 짓는데 아주 큰돈을 들였다고 한다. 역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름도 돈 값을 한다.


내 몇 개의 이상형 중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공감받지 못한 이상형은 '이름이 예쁜 사람'이다. 공감을 별로 사지 못한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예쁜 이름'이 객관적으로 그다지 예쁜 이름이 아닐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름보다는 어감을 중요시했다. 그리고 이름 자체보다는 싫어하는 글자가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이름에 내가 싫어하는 글자가 있으면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가지 않는 거다. 내 경우엔 '희'가 그렇고 '주'가 그렇고 '지'가 그렇다. 반대의 경우는 '유'가 그렇고 '정'이 그렇고 '수'가 그렇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글자가 이름에 다 있다고 해서 마냥 예쁘다고 생각하는 이름이 되는 건 또 아니다. 예를 들어 내 기준에서 '유수정'은 예쁜 이름이 아닌 것이다. 반면 싫어하는 글자가 이름에 다 들어있다고 해서 마냥 싫은 이름인 것도 아니다. 이현령비현령. 이래서 공감을 못 받았나 보다. 그냥 내가 좋으면 이름이 설령 '옥자'여도 상관이 없는 건데. 그냥 어떤 사람이 좋고 싫은 걸 굳이 이름으로 핑계를 대는 건 아니냐는 날카로운 반문에는 항상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내 이름이 예쁜 것과는 별개로 나는 한동안 내 이름을 싫어했다. 장난스레 나를 '혁'이라고 소개한 적도 있다. 내 이름의 마지막 글자인 '넉넉할 우(優)'자 때문이다. 이 한자에는 사람 인 변(人)에 근심 우(憂) 자가 붙어있다. 그러니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걱정이 많은 사람인 이유가 이 이름 때문은 아닐까. 내 이름에 큰돈을 들인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셨지만 실제로 사주에 능한 분께 이 의심을 고백하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다.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진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웠다. 나는 언제나 근심에 빠져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 싶어서.


내 이름 세 글자 중 유별나게 싫은 건 내 성씨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세 개의 성씨 중 나와 같은 성씨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유감을 표한다. 우리는 하필 이 성씨로 태어나 툭하면 무언갈 깨야하거나 박차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보다 더한 이 성씨의 단점은 아주 각진 단어라는 점이다. 내 경우에는 자기소개를 할 때 이름을 말하기가 두려운데 그것은 내 투박한 경상도 억양이나 사투리의 문제가 아닌 내 이름이 가진 날카로움 때문이다. 하필이면 각진 성과 각진 두 번째 글자에 눈치 없이 유순하고 근심 많은 끝 글자가 붙어 이 뾰족함은 합쳐졌을 때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진다. 나는 종종 내 이름을 말하면서 스스로가 너무나 극악무도하다고 느낀다. 그런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내 각진 이름 때문에 첫 소개에 나를 불편하게 여긴 분들께 사과를 전한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는 조금 달랐다. 내 예쁜 이름은 축약될 때 더욱 귀여워졌다. 단순 편의 때문에 '찬우'는 '차누'가 되었지만 나는 그 단어를 볼 때마다 이유모를 평안을 느꼈다. 찬우는 차갑고 날카롭지만 차누는 따뜻하고 부드럽다. 칼날 같은 내 이름이 '두부'나 '만두' 같은 귀여운 강아지 이름으로 개명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이 단어를 볼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닥스훈트가 떠오른다. '차누'는 길쭉하고 느긋한 느낌을 가진 예쁜 소리가 나는 이름이다.


그래서 나도 비슷한 소리가 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꼈다. 내 여자 친구들은 대개 내 기준으로도, 남들이 느끼기에도 예쁜 이름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 이름을 '아기'니 '자기'니하는 아기자기한 애칭과 바꾸고 싶지 않았다. 가끔 그녀들은 그런 나를 딱딱한 사람이라고 힐난했지만, 나는 고집스럽게도 그녀들의 이름을 불렀다. 물론 성은 떼고 말이다. 여자들의 세계에서 친함과 친하지 않음을 구별하는 비교적 명확한 증거 중 하나가 성을 붙여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던데. 여자들은 친할수록 성을 붙여 이름을 부른다던데. 나는 왜인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성을 떼고 이름을 부르는 게 더 좋았다. 


'이름'이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애칭이 아닐까? 최지수 면 지수, 신유나 면 유나. 얼마나 예쁜 소리가 나는가.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게 좋았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내 풍만한 사랑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역시 사람은 이름값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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