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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09. 2020

사랑에도 가난이 필요하다

결핍에서 오는 절실함이 필요하다

내 일곱 번째 연애는 가난 때문에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녀의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복기했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고 한창 금전적으로 부족했던 나는 의도적으로 데이트를 미루곤 했다. 그래서 어느 새벽엔 투정 가득한 전화를 받았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내 지갑 속 결핍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이유라는 듯 대꾸했다. "오빠랑 손 잡고 걷는 것만 해도 좋아요." 그때는 그게 진심인 줄 알았다.


다음 날, 우리는 손을 잡고 학교 근처 시냇가를 걸었다. 30분이 지났다. 피로가 몰려왔다. 예쁘장한 카페가 보인다. 다리가 아프고 목이 말랐지만 애써 못 본 체했다. 2시간이 지났다. 산책로의 끝이 보인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집에 갈까? 배가 너무 고팠지만 밥을 먹자고 할 순 없었다. 내 수중에는 집으로 돌아갈 차비 정도만 있었으니까.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 그녀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줬다. 어딘가 모르게 뚱해 보였다. 그 날 새벽, 또 전화가 왔다. 나도 이젠 도저히 모르겠다.



 

어느 특정 시기에 잠시 알고 지낸 형이 한 명 있었다. 여러 분야에 해박하고 유쾌한 성격이라 누구에게나 쉽게 호감을 샀다. 그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어딘가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다 함께 뒷고기에 소주 한 잔을 마시는 자리에서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그가 내게 말했다. "너한테는 있는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여유가 보여. 근데 그게 또 그리 거만해 보이진 않아. 그러기 쉽지 않은데. 너는 참 특이한 애야." 그러곤 본인은 흙수저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하지만 그 뒤에 붙은 말에는 뼈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너 같은 애들이 싫었어. 여유 있으면서, 가난을 모르면서, 가난한 나를 편견 없이 대하는 착한 사람들이 싫었어. 차라리 나쁜 사람이었다면 쉽게 미워했을 텐데. 그때는 내 가난이 죄 같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래서 나는 흙수저란 말이 싫어. 무엇보다도 우리 부모님이 그 단어를 알게 될까 두려워. 그 단어를 알게 되면 당신의 자녀들에게 흙수저를 물려준 건 아닌지 괜한 고민을 할까 싶어 걱정돼. 나는 우리 부모님께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좋은 흙을 받았어. 흙수저가 아니라." 부글부글 졸아가는 된장찌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멍하니 형의 주사를 흘려듣다 마지막 말에 뒤통수 한 대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나는 금수저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형의 말에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꽁꽁 숨겨놓은 내 속마음의 딱 절반 정도를 들킨 것만 같아서였다. 부끄럽지만 가난에 대한 내 목적 없는 호의는 동정심이 아닌 '동경심'에서 기인했다. 형은 나를 그저 편견 없는 착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겠지만 슬프게도 나는 의도적으로 그를 가까이했다. 가난을 원치 않으면서도 가난이 주는 '무형의 힘'은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은 흙을 받았다는 형의 마음가짐에도 물론 감복했지만 무엇보다도 가난이 가진 울분을 적확히 이해하고 이를 반등의 기회로 삼을 줄 아는 형의 강인함을 베끼고 싶었다.


그렇다. 내겐 가난이 필요했다. 가난이 주는 절실함이 필요했다. 그 절실함에서 시작되는 원동력이 필요했다. 누군가 등 떠밀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뭐든 적당히 갖춘 사람들에게 '시작'은 항상 남의 일이었다. 나는 유복하진 않았지만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적당히 공부했고 적당히 소비했으며 적당히 사랑했다. 그래서 늘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미적지근했다. 반면 그 형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무얼 하든 이를 꽉 깨물고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거지근성'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것을 '열정'이라고 불렀다. 결국 그들은 본인이 원하는 삶을 쟁취했고 가난을 벗어났다. 그럴 자격이 있고 그래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러지 못한 나는 그들의 가난을 부러워만 했다. 그들의 절실함을 질투했다.




내 여자 친구들은 가난했다. 어쩌면 그들을 향한 나의 애정도 가난에 대한 동경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겠다. 그녀들은 가난했고 그래서 자립심이 강했다. 나는 우유부단해서 자주 우물쭈물 댔지만 그녀들은 그런 내 손을 잡고 어디든 휙휙 잘도 돌아다녔다. 그 터프함과 씩씩함에 매료되었다. 확고한 경제관념과 가깝더라도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그녀들의 치밀함에 반했다. 반면 그녀들은 내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겪어보지 못한 가난을 막연히 부러워했던 나와 같이 그녀들도 가지지 못한 내 무언가를 부러워했을까.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고작 커피 한 잔을 못 마셔서, 밥 한 끼를 못 먹어서가 아니다. 사랑에도 가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 형의 말처럼 사랑에도 가난은 죄가 아니다. 뭐든 베풀고 더 해야 한다는 사랑의 사전적 정의만을 맹신했기 때문이다. 몇 푼의 돈을 더 들여야만 비로소 사랑의 증거가 드러난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 시각에서만 사랑을 관조했기 때문이다. 


가난은 멀고도 가깝다. 비단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그렇다. 가난하지 않은 사랑을 위해선 결핍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 결핍에서 오는 절실함을, 그 이후에 맛보는 여유의 소중함을 체득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에도 가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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