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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ug 25. 2020

신인류의 사랑

5가 직감적으로 코앞에 닥친 이별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 내게 물었다.


"사랑이 먼저야 우정이 먼저야?" 


나는 답했다.


"당연히 사랑이 먼저지. 사랑 때문에 깨질 우정이 무슨 우정이야? 그리고 우정보다 사랑의 힘이 훨씬 세."


5는 곧바로 수긍했고 우리는 자기 얼굴에 가래침을 뱉는 이야기들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그 과정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쯤엔 여섯 캔의 맥주 또한 단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새벽 한 시 반, 우리는 두 시간을 퍼질러 앉은자리에서 일어났고 생기를 잃은 꽁초들 사이로 피우던 담배를 체념하듯 던졌을 때 희미한 어둠이 그것을 받았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굳이 듣지 않아도 뻔한 이유일 것이며 그것은 남자의 문제이거나 여자의 문제일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왜 자주 해주지 않느냐는 투정이 아마 모든 문제의 근원일 테고 전화, 문자 혹은 지척에서 송곳같이 내뱉는 이별의 말들 뒤에 어쩔 수 없이 또, 지극히 당연하게 휴대전화 어딘가에 물리적으로 남은 모든 기록들에 삭제 버튼을 누른 것이 마지막 기억일 테니까.


5는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느냐는 답 없는 물음을 던졌고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연애를 하자는 공허한 답변을 툭 건넸다. 끝이 보이는 사랑은, 결승점이 존재하는 사랑은 오프닝부터 엔딩이 불 보듯 뻔한 영화처럼 질주하니까. 해피 혹은 새드를 양자택일 해야 하는 각본 같은 연애를 피하자고. 우리, 너무 아프기 싫으면 그런 연애는 시작조차 하지 말자고. 5는 늘 그랬듯이 내 말에 수긍했다. 이것은 순서가 다른 두 번째 기억.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는 사랑에 빠진 남녀를 비교적 섬세한 확률 계산을 통해 묘사한다. 그렇다. 사랑 또한 비록 딱 맞아떨어지진 않지만, 수치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임에도 우리는 그 시작과 끝에 추억이라는 감정을 구태여 집어넣기 때문에 이런 수학적 사고를 로맨틱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 확률의 결괏값을 알게 되면 이런 접근법이 얼마나 로맨틱한 것인지를 설득하지 못한 채 5의 연애는 그렇게 엄청나게 희박한 확률로 시작해 50퍼센트의 결말 중 하필이면 비극으로 끝을 맞이했다. 수치스러운 수치.


'오빠, 너, 당신'으로 대상이 다른 여러 입에서 튀어나온 말 중 가장 많이 수집된 다툼의 이유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서 너무 섭섭하고 밉다'는 모호함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랑한다는 말은 늘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과 같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자리에서 얼떨떨하게 얼어붙었다. 결국 사람은 꼬치꼬치 말을 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먹지 못하는 동물이라 나는 항상 이별의 예후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말에 5는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신기하네. 그렇게 남의 생각을 잘 읽는다는 녀석이 되려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핵심적인 아픔을 끝이 다가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라고 말하려다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어느 저녁,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한 번도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적이 없어. 이기적이지만 그건 너무 힘든 일이라서 차라리 헤어질 빌미를 제공하기 위해 더 나쁘게 행동하는 거 같아."


"오빠 진짜 개새끼네요!" 


그녀의 장난 섞인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모니터 뒤로 몸을 숨겼다.


'아, 나는 진짜 개새끼구나. 하지만 차라리 이 바운더리 안에서만큼은 내가 개새끼가 되더라도 그 사람들은 정당하고 착한 사람으로 남아서 다행이다.'


그 자리에서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의 일부를 한숨처럼 꺼내자 5는 잠시 멈칫. 그러다 또 늘 그랬듯이 내 말에 너는 나를 멋진 녀석이라고 했다. 나는 네 어깨를 툭치며 고맙다고 말했다. 이것은 순서가 다른 첫 번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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