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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an 06. 2021

우리의 이별에 우리의 잘못은 없다

잘못의 잘못만 있을 뿐

우리의 이별에 너의 잘못은, 나의 잘못은 없다. '잘못'의 잘못만 있을 뿐.


재작년 9월, 나는 회기역 근처의 승준이 집에 짐을 풀고 너를 만나러 갔다. 낮은 굽의 흰 구두와 청바지, 커리어우먼 느낌의 하얀 퍼프 블라우스를 입은 너를 보며 생각지도 못한 강렬한 호감을 느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제발 오늘 이 아이랑 잘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만 빌었다. 여의도 불꽃축제를 보며 그날 우리는 인사불성으로 취했고 같이 잘 뻔했으나 각자 다르게 자라온 환경이 이를 잘 막아냈다. 나는 그날  때문에 많은 돈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고 그렇게 우리는 평생 남남이 될 거 같았다. 승준이는 한 시간 거리의 내 택시비를 대신 내주었고 나는 그의 시험기간을 방해하며 여자는 이해 불가능한 동물이라고 조잘거렸다.


하지만 그날이 우리를 지폈다. 바로 얼마 뒤 성수동에서 일정을 마친 나는 그녀와 을지로에서 만났다. 까만 터틀넥에 까만 구찌 벨트를 허리춤에 매고 있던 그녀가 눈에 선하다. 요즘 진로가 유행이래. 발그레한 그녀의 말에 탄내가 나는 닭발과 질긴 먹태를 먹으면서도 나는 헤벌쭉 웃었다. 택시 기사님이 우리의 동선에 수작을 걸었지만 어쨌든 그날 밤, 나는 그녀의 집에 갔다. 그녀의 집 병원 근처, 순대를 파는 간이 포장마차를 차마 지나치지 못한 그녀의 생떼를 받아주며 나는 우리의 3차를 차근차근 준비했으나 '닥치고 그냥 올라와'란 그녀의 과감한 어필에 한순간 이성의 끈을 풀었다.


바로 다음 날, 주말임에도 출근한 그녀가 해장을 핑계로 본인의 회사 근처로 나를 불러냈다. 순대국밥을 말끔히 비우던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는 내가 떠나고 나서야 카톡으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이제 어떡할 거야? 나는 에둘러 말하면서도 확언하지 못했다. 창창한 미래를 가진 그녀에 비하면 나는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애타게 원했으나 비겁하게도 나는 선택권을 떠넘겼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통에도 애들은 태어났대. 나는 그제야 사랑을 고백했고 그녀는 흔쾌히 받아주었다.


우리는 불타올랐다. 우리의 첫 만남과 애매하게 겹친 그녀의 생일을 보다 더 애매하게 챙겨준 게 미안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사랑하려 노력했다. 한강을 갔고 난생처음으로 그녀와 치즈볼을 먹었다. 생각보다 한강은 추웠고 데이트 이후, 나는 꽤 오랫동안 급성 편도염을 앓았다. 하지만 그녀의 예쁜 모습을 프레임에 담았다는 거 하나만으로 아픈 내색이 덜 할 수 있었다. 나를 보러 그녀가 부산으로 왔고 내가 좋아하는 돼지국밥 집에서 나는 따가운 목을 부여잡고도 맛있게 데이트를 즐겼다. 절반을 남긴 그녀와 담배를 피우던 그녀가 오버랩된다. 그날 아주 예쁜 카페에서 400장 넘게 찍어 건진 사진은 꽤 오랫동안 그녀의 프로필로 사용되었다.


내가 대학시절 종종 방문했던 카페에서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물론 장난으로 말이다. 그 몇몇 내용은 이렇다. SNS 터치 금지. 매일 전화해야 된다는 생각 가지지 말기.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천만 원을 지급하기. 그녀는 언제쯤 입금할까. 구두 계약도 법적 효력이 있다던데. 우리는 서명까지 마쳤다.


얼마 뒤 그녀와 영등포에서 양탕에 고량주를 마셨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릇을 말끔히 비우는 나를 보며 그녀는 했다. 내년 겨울에 나랑 또 오자. 12월, 손발이 얼어붙는 날이었다.


그녀는 요리를 잘했다. 뚝딱 만들어 낸 크림 파스타는 지나치게 양이 많았으나 그녀의 성의를 무시하지 않기 위해 내색하지 않고 꾸역꾸역 면을 삼켰다. 베이컨이 없어 대용으로 넣은 스팸은 너무나 잘게 부서져 도저히 내 취향의 식감이 아니었으나 그녀의 마음만으로도 꽉 찬 포만감은 쉽게 이겨낼 수 있었다. 내가 뭐라고.


그녀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몄다. 아이 같은 즐거움을 보이던 그녀가 내 선물 꾸러미를 보며 생각보다 큰 선물인 것 같다며 기대했다. 예거 밤을 진탕 퍼마시고 선물을 뜯어본 그녀는 확실히 실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귀여운 탁상시계를 그녀는 다음 날에야 칭찬했다. 태블릿 PC를 선물했던 그녀 앞에 초라함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찬우, 이거 있으면 취업에 도움 많이 될 거야. 나는 그 정도의 남자 친구가 못 되는데.


그녀와 많은 미술관을 다녔다. 무엇보다 본인만의 취향이 확실하고 이를 재치 있게 표현할 줄 아는 똑 부러진 그녀가 좋았다. 어울리지 않게 전시를 보러 다니는 나를 당연하게 생각해준 것도 고마웠다.


내 생일을 맞았다. 처음으로 함께 고깃집을 방문한 그날 꽤 크게 싸웠다. 고기를 잘 못 굽는 나와 누구에게나 인싸인 그녀는 불판 교체 요청의 잦음을 이유로 쓸데없는 갈등을 벌였다. 생일이지만 얻어먹는 나와 밥을 사주지만 생일자의 기분을 상하게 한 그녀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잠시 있었다.


다음 해, 기껏해야 군 선후임과 찌질하게 찾았던 롯데월드를 그녀와 방문했다. 놀이기구를 무서워한 해병대 출신의 나는 놀이기구를 즐기던 미필의 그녀에게 더 크게 반했다. 애써 센 척을 했으나 얼굴이 파랗게 질린 나를 배려해 그녀는 혼자서 몇 번이고 자이로드롭을 탔다. 나는 목이 빠져라 그 모습을 바라만 봤다. 폐장 직전, 회전목마 앞에서 처음으로 누군가 그녀와 내 커플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은 엉망이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블루보틀을, 이태원을, 문래동을, 타임스퀘어를 갔다. 서울이 어색한 부산 촌놈에게 서울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줬다. 바로 얼마 뒤 그녀에게 처음으로 꽃을 선물했다. 하루 간격으로 꽃의 진행상황을 보고하던 그녀를, 저무는 꽃에 슬퍼하던 그녀를 보며 더 자주 꽃을 사다 줘야지 다짐했다.


그녀에게 첫 요리를 대접했다. 요리 유튜브 채널을 끊임없이 구간 반복하며 한 시간을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찜닭 하나를 완성했다. 양 조절에 실패했지만 기꺼이 그릇을 깔끔하게 비워 준 그녀를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배려였다. 평소 위가 작았던 그녀는 내 정성을 위해 정량보다 훨씬 많이 먹었고 그날 밤, 나 몰래 구토를 했다. 뒤늦게야 이를 알고는 가슴 한쪽이 서글퍼졌다. 내가 뭐라고.


언젠가 그녀는 있지의 광팬인 나를 위해 인사동에서 커다란 있지 브로마이드를 사주었다. 인증샷을 찍자는 그녀의 말에 부끄러워하는 내 포즈를 보고 가게 사장님은 배꼽을 잡으며 천 원을 깎아주셨다.


술을 좋아하던 그녀와 술을 잘 마시던 나. 우리는 함께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잔을 기울였다. 술 때문에, 주사 때문에 또, 그것을 핑계 삼아 나눈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젠더 이슈 때문에 참 많이도 싸웠다. 어쩌면 내게 그녀와의 술자리는 다음 날 아침의 숙취처럼 흐릿하나 지워지지 않는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나와의 보드게임 대결에서 늘 우위를 점했다. 나는 매번 툴툴거리며 '시간을 질질 끈다', '운이 좋다'라고 그녀의 승리를 한껏 낮췄지만 실은 똑똑한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꼬물이와 쇼텐토텐, 패치워크, 사그라다를 하며 우리는 많은 시간을 죽였다. 가게 사장님이 알은체를 할 정도로.


그녀는 매운 음식을 좋아했다. 매운 건 질색하던 나도 덕분에 마라탕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여전히 떡볶이는 내 취향이 아니라 잘 못 먹지만.


그녀는 본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의류가 라이더 재킷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정체성은 원피스였다고 기억한다. 편하고 예쁘다는 이유로 다양한 원피스를 사모으던 그녀. 대개 원피스는 그녀와 꼭 맞춤이었고 내 기억 속 대부분의 그녀는 원피스 차림새였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초기, 그녀는 <부부의 세계>를 즐겨봤고 나는 그런 풍기문란 조장 드라마는 가급적 피하라고 주의를 주면서도 그녀가 틀어준 9화에 누구보다 과몰입하는 개청자의 면모를 보였다.


언젠가 그녀와 등산을 마치고 찜질방에 갔다. 가마솥 방을 오래 참지 못하고 후다닥 달아나는 나와 달리 그녀는 꽤 오랫동안 더위를 버텨냈다. 그녀는 겨울을 싫어했다. 반면 나는 여름을 싫어했다.


그녀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양이들도 그녀를 좋아했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는 특이한 이름의 고양이 두 마리를 키웠고 그녀는 종종 내게 녀석들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실제로는 딱 한 번 봤다.


처음으로 그녀와 가평으로 여행을 떠났다. 면허가 없는 나를 대신해 운전대를 잡은 초보 운전의 그녀는 뒤따라오는 차량의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만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내비게이션의 문제로 절벽에서 추락할 뻔한 뒤로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숙소로 돌아가자고 닦달하는 나 때문에 그녀는 예상보다 일찍 쏘카를 반납했다. 그날 밤에는 적은 비가 내렸고 우리는 고기를 구워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순전히 내 취향 때문에 낮에는 베이지색 투피스, 밤에는 빨간 원피스를 입었다.


이후 여수로 가족여행을 떠난 나에게 그녀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고했다. 부랴부랴 그녀를 찾아가 마음을 돌리려 했던 나에게 완강한 거절을 표하던 그녀는 이 편지의 초안을 읽으며 엉엉 울던 내가 머릿속에 선하다며 부산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가 출발하기 딱 5분 전에 나에게 돌아오라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곧장 버스를 뛰쳐나가 9호선을 탔다. 극적인 재결합 이후 조금만 다투게 되어도 나는 이때의 일을 장난스레 꺼냈고 그녀는 매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이후 몇 가지 큰 행복이 더 있었으나 우리는 이를 애써 무시하며 나빠졌다. 나의 연이은 최종 탈락과 더불어 특히 우울함의 시기가 이중으로 겹쳤던 어느 날엔 별 것도 아닌 일로 나와 그녀는 서로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 했다. 그날은 비가 억수로 내렸고 나를 피해 잠시 나가 있던 그녀가 오랜 시간, 크게 울고 돌아왔다는 걸 알아채 아득한 죄책감을 느다. 오랫동안 이와 관련된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찌어찌 서로의 간격을 잘 이어 붙였다 여겼다. 그녀와 더 잘 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을 가장한 변명과 핑계의 말들이 없지 않아 그녀를 옥죄지 않았나 싶다. 이제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훨씬 가까워졌으나 그녀의 마음은 돌아올 수 없는 너비의 강을 건넌 것만 같았다. 너무 착한 그녀는 나를 위로해주다 깰 수 없는 벽 앞에 큰 좌절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는 분명 내 잘못이 아니었으나, 그녀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가진 태생적 잘못의 잘못만 있을 뿐.


헤어짐을 인정한 지금의 순간에서야 세 번째이자 마지막인 편지를 쓴다. 생각을 글로 옮기니 내 잘못의 잘못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한 번이라도 더 요리를 해볼 걸. 한 번이라도 더 같이 떡볶이를 먹어볼 걸. 한 번이라도 더 너를 데리고 여행을 떠날 걸.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할 걸. 늦은 이유에 늦은 변명이다. 이 사랑의 유통기한이 다했다는 것을 나 또한 어느 순간부터는 어렴풋하게 느꼈지만, 설령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하더라도 너와의 첫 만남을 없던 일로 만들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온당하다.


글을 마치며 누구보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했던 나를 이리저리 이끌던 그녀가 사라진 미래를 상상해본다. 꽤 많이 힘들고 아프고 방황할 것이다. 우리의 타이밍이, 무관심이, 잘못의 잘못이 이별을 만들었다. 심장이 끊어질 것 같이 아프지만 무엇 하나 아까울 것 없는 그녀의 배려심에 제일 먼저 감사를 보낸다. 본인의 행복을 위해 나를 떠난다는 마지막 말에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혼잣말을 쏟아냈다.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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