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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ug 05. 2020

<양화대교>

삶의 무게


택시 안에서



특별할 게 없는 노랫말에도 눈물이 찔끔 날 때가 있다. '부모님'과 관련된 노래들이 특히 그렇다. 유교사상을 그 누구보다 혐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족주의 문화에 익숙해진 탓일까. 일반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아이러니에 절실히 공감할 것이다. 특히나 본인을 불효자, 불효녀라고 자책하는 사람들이라면.


택시는 오묘한 공간이다. 나는 택시를 잘 타지 않는데 비용이 부담되는 면과는 별개로 흔한 유행가의 노랫말과 달리 쉽게 상념에 빠지지 못하는 타의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개 택시 기사님들은 늘 피곤하고 지루해 보인다. 매번 비슷한 루트를 통해 승객들을 실어 나르는 그들은 도로 위의 하이에나 같다. 바쁜 일상에 쫓기듯 탑승한 사람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곤 무작장 신상을 캐묻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객은 그들의 지난한 하루를 잠시간 달래줄 유희 거리가 된다. 나는 그게 싫다.


그들은 라디오를 많이 듣는다. 직업 특성상 한 눈을 팔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과 같은 뉴미디어 시대에 라디오라는 구닥다리 미디어가 아직도 생명을 연장하는 이유는 이들의 공로가 크다. 그들은 무슨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하고 있을까. 매번 대화를 걸지 말라는 무언의 뜻으로 이어폰을 끼고 있는 나는 그들이 어떤 음악을, 어떤 라디오를 듣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조용히 목적지로 가고 싶을 뿐이니까.


어쩌다 가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화의 끝은 대개 본인들의 자식 자랑으로 귀결되었다. 그런 분들은 보통 차량 어딘가에 꼭 가족사진을 세워두었다. 사진을 자세히 보여주며 자식들 칭찬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생기를 잃었던 그들의 눈도 그때만큼은 그 어떤 차량의 전조등보다 밝게 빛난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도시의 하이에나들도 결국엔 한 가정의 부모임을 그때서야 여실히 느낀다. 가족이란.


https://www.youtube.com/watch?v=uLUvHUzd4UA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PART A]


우리 집에는

매일 나 홀로 있었지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양화대교"

아침이면 머리맡에 놓인

별사탕에 라면땅에

새벽마다 퇴근하신 아버지

주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하네

엄마 아빠 두 누나

나는 막둥이, 귀염둥이

그 날의 나를 기억하네

기억하네



화자의 유년기로 A 파트가 시작된다. 화자는 매일 집에 혼자 있다. 맞벌이 가정의 자녀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택시 기사이다. 유년 시절의 화자는 심심함에 수시로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아빠 어디야?" 아빠는 대답한다. "양화대교지~"


홀로 있는 집에서 심심해하던 화자는 부모님을 기다리다 스르륵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이면 화자의 머리맡에는 별사탕과 라면땅이 놓여있다. 화자의 아버지는 퇴근길 새벽마다 주머니 한 가득 화자를 위한 주전부리를 담아온다. 외롭게 본인을 기다리고 있었을 그의 막둥이를 위해. 그렇게 양화대교를 건넌다.



[Hook]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화자는 행복하자고 말한다. 엄마와 아빠 두 누나에게 말이다.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고 말한다. 아프면 불행하니까. 돈을 잃으면 하나를 잃고 명예를 잃으면 둘을 잃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딘가 한 군데 쯤은 아프기 마련이다. 그 강도가 매우 심한 사람도 드물지 않으니 아픈 사람이라면, 주변에 아픈 사람을 둔 사람이라면 이 가사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청자들의 마음 속에선 눈물이 난다. '아프지말고 행복하자'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왜이리 지켜지기 힘든 말인건지.



[PART B]


내가 돈을 버네, 돈을 다 버네

"엄마 백 원만" 했었는데

우리 엄마 아빠, 또 강아지도

이젠 나를 바라보네

전화가 오네, 내 어머니네

뚜루루루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물어보는 말에

나 양화대교 "양화대교"



어린 시절의 화자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Zion.T라는 이름의 가수로 성장했다. "엄마 백 원만"했던 어린 시절의 화자는 유명한 가수가 되어 많은 돈을 벌었다. 혼자 쓸쓸하게 부모님을 기다리던 화자는 이제 엄마, 아빠, 강아지를 돌보는 가장이 되었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들 잘 지내니?" 어디냐고 묻는 말에 화자는 답한다. "엄마 나 양화대교~"


A 파트에서 B 파트로 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던 어린 시절의 화자는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아빠는 승객을 위해 양화대교를 건넜지만 현재의 화자는 스케줄을 위해 양화대교를 건넌다. 양화대교를 건너는 이 두 가지 다른 '이동'은 결국 '가족을 부양한다'는 궁극적인 공통점을 가진다. 이 '시간의 변화'와 '전화를 수신/발신하는 사람의 변경'으로 인해 삶의 무게가 이동한 것을 표현한다. 가장이 변한 것이다. 아빠에서 화자로.



[Bridge] 


그때는 나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몰랐네

그 다리 위를 건너가는 기분을

어디시냐고 어디냐고

여쭤보면 아버지는 항상

양화대교, 양화대교

이제 나는 서있네 그 다리 위에



어릴 때의 화자는 몰랐다. 그저 아빠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랬을 뿐이다. 어쩌면 아빠의 주머니에 가득 담긴 별사탕과 라면땅만을 기다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철없는 나이였으니까. 직접 양화대교를 건너고 나서야 당시 양화대교를 건너는 아버지의 기분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지금, 화자는 조금이나마 아버지와 닮아가기 시작한다.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은 당시의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을 이해한다.


마지막 라인의 해석이 조금 모호하다. 양화대교에 '서 있다'는 표현은 조금 부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살을 앞둔 한 가장을 묘사했을 수도 있겠다는 점에서 슬픔과 이해를 더 극적으로 표현하는 장치 같기도 하다. 하지만 청자들이 이 곡을 들으며 떠올릴 보편적인 감동을 훼손하고 싶지 않기에 굳이 그런 해석을 덧붙이고 싶진 않다. 화자는 그냥 서 있다. 어린 시절의 가족들을 추억하며. 양화대교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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