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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ug 01. 2020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Datoom>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


적당한 청량함과 쓸쓸함



나는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을 가진 음악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세부적인 프로덕션에 영향을 많이 받겠지만 대체로 정답에 가까운 공식 정도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과해도, 조금만 모자라도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감성'이란 파트에서 비교적 대부분의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테마는 바로 적당한 '청량함'과 '쓸쓸함'이다.


이 점에서 현시대의 감성을 정확하게 꿰뚫는 아티스트는 오늘 소개할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과 <Datoom>을 부른 백예린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진 그녀는 아티스트로써 꽤 오랜 시간 동안 방황한 것처럼 보인다. 작업물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고 활동 소식도 뜸했다. 그녀만의 압도적인 음색과 분위기를 잘 활용하지 못한 소속사를 향한 비난이 빗발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백예린은 사운드 클라우드와 유튜브를 통해 그녀만의 적당한 척량함과 쓸쓸함을 통해 '힙'해지기 시작했다.


근래의 음악은 음악성만큼이나 힙한 것이 중요했다. '내가 이런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게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되면서 음악도 일단은 '있어 보여'야 했다. 여기에 백예린은 가장 적합한 아티스트였다. 수려한 음색과 이를 뒷받침하는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비주얼. 그리 많지 않은 활동을 통해 쌓은 타의적인 희소성과 유명 커버 곡들을 바탕으로 쌓은 그녀만의 개성은 알게 모르게 힙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했고 그녀의 음악은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를 세련되고 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그녀의 음악이 소비되는 이유가 이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음악적으로도 유일무이하다. 그녀의 음악은 저 멀리서 아주 작게 들려도 누구나 백예린 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진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행보 또한 주목할만하다. 백예린과 동년배의 뮤지션 중 비슷한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이 당장 아무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독보적이다. 과연 그녀를 인디나 포크의 장르로 가둘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녀가 작년에 발매한 [Every letter I sent you.]의 수록곡 18 트랙 전부가 음원차트에서 줄을 세웠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대중성을 뜻하기도 하는 멜론 차트에서 그녀의 곡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나는 놀랐다. 대한민국에서 큰 인기를 끌만한 장르 음악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확언한다. 같은 노래를 백예린이 아닌 다른 사람이 불렀다면 그렇게 큰 흥행을 일으키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이번 편은 이례적으로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과 <Datoom> 이 두 곡을 합쳐서 가사도우미를 진행할 예정이다. 하나의 연결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점도 물론 주요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음악들이기도 해서 그렇다. 심지어 그녀는 가사도 매우 잘 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YDrYcqbCs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JNz5RmBNOfY

<Datoom>




알다가도 모르겠는


[PART A]


돌리기 아쉬운 내내 안타까워만
하는 내 발걸음을 그댄 눈치챘나요
들키기 싫었던 아무도 모르게 했었던
내 모습을 그댄 너무 쉽게 보아버렸네요


묘한 내 기분과 괜한 날씨 탓도
괜히 해보지만 그댄 알고 있는 걸까요
끊이지 않는 질문과 숨기고픈 내 마음 사이에
그댄 날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속의 화자는 귀엽다. 세상의 어떤 남자가 이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발걸음을 돌리기 아쉬워 내내 안타까워만 하고, 들키기 싫어 아무도 모르게 숨겼던 내 모습을 너무 쉽게 보여줬나 하는 후회를 보이는 모습.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감정을 참 귀엽게 표현했다.


그러니 변명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행동에 기분과 날씨 탓을 해보지만 눈치채고 쉽게 보아버린 그대는 이러한 변명마저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대의 끊이지 않는 질문과 그 대답을 숨기고픈 화자의 마음 사이에서 그대는 화자를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Hook]


I don't know, 나를 알면 알 수록

You don't know, 나도 모르겠는 것처럼

I don't know, 나를 알면 알 수록

You won't know,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



썸 혹은 연인 관계에서 '앎'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에게서 전혀 알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니까. 훅의 가사는 이 이중성을 집약한다. '나도 모르겠다.(I don't know) 나를 알면 알수록 ', 그러니 '너도 모른다.(You don't know, You won't know) 내가 날 모르겠는 것처럼'



[PART B]


묘한 그 표정과 우물쭈물 했던 나를

생각해봤지만 그댄 알고 있었을까요

끊이지 않던 질문에 숨어버릴 날 알면서

무슨 이유로 나를 필요해 하나요

 


B 파트의 가사는 A 파트와 재밌는 대비를 이룬다. 앞서 A 파트에서 화자는 '묘한 내 기분과 괜한 날씨 탓'으로 내 감정에 대한 변명을 진행했다면 B 파트에서 화자는 '묘한 그 표정과 우물쭈물했던 나를' 생각해본다. 회상하는 것이다. 그 변명의 과정을 회상하며 다시 한번 궁금해한다. 당신은 알고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A 파트에서는 '끊이지 않는 질문과 숨기고픈 내 마음 사이에 그댄 날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라고 묻지만 B 파트에서는 '끊이지 않던 질문에 숨어버린 날 알면서 무슨 이유로 나를 필요해 하나요'라고 답한다. 변명에 가려진 질문이 있는 것이다. 당신은 왜 내가 필요한가요?



[PART C]


I believe in eyes

I believe in your eyes

난 시간을 멈춰서 네게 말하고파

그게 아니면 난 기다리겠지만

순간의 아쉬움이 티나는 건 싫겠지



C 파트는 피처링으로 참여한 카더가든의 파트다.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탁월한 피처링 기용이 아닌가 싶다. 청량하고 캐주얼한 백예린의 보컬에 비해 다소 무겁고 윤기가 흐르는 카더가든의 목소리로 상대방의 입장을 표명하는 파트는 가히 이 곡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화자의 상대는 눈을 보고 말한다. 나는 눈을 믿고(I believe in eyes), 당신의 눈을 믿는다.(I believe in your eyes) 내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 화자에게 정공법으로 다가간다. 네가 필요한 모든 이유는 내 눈에, 또 네 눈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난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멈추고 네게 말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그저 기다리겠지. 순간의 아쉬움이 티 나는 건 싫으니까. 이유를 물었던 화자처럼 그대 또한 판단을 유보한다. 하지만 전혀 이기적이지 않다. 오히려 화자를 배려함이 느껴진다. '순간의 아쉬움'이 티 나는 건 싫지만 재촉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화자와 그대는 '썸'의 상태일 수도 있겠다.




다툼


[PART A]


그와 다툰 뒤엔 난 시집을 꺼내 읽어

모자란 내 마음 채우려 늘 그래

그가 없어서 부족한 건데 그래 


그와 다툰 뒤엔 난 물을 벌컥벌컥

허무한 내 안을 더 더 채우려

그가 가고서 속이 텅텅 비었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화자와 그대는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Datoom> 속의 화자는 모종의 이유로 그대와 다툰 이후의 상황에 처했다.


그와 다툰 화자는 시집을 꺼내 읽는다. 화자는 늘 어딘가 마음이 모자랄 때면 시집을 읽기 때문이다. 이 마음의 모자람은 '그'가 없기 때문인데 괜히 시집을 찾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와 상관없이 어딘가 허할 때마다 찾았던 시집은 사실 이 상황에서는 그리 큰 쓸모가 없다. 그가 있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니까. 또, 화자는 그와 다툰 뒤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허무한 속을 더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가 떠나가고서 속이 텅텅 비었기 때문이다.


타툼 이후의 연인 간의 공허감을 '시집'과 '물'을 통해 묘사했다.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내 속을 채우는 오브제지만 이 둘의 방향성은 약간 다르다. 처음 시집은 그녀의 내면을 채우려 등장한 메타포라면 물은 그녀의 물리적 속을 채우기 위해 등장한 메타포다. 둘 다 큰 효력은 없지만 어쨌든 무언갈 채우기 위해 대내외로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앞서 <내가 날 모르는 것처럼>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연인과의 다툼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감정을 귀엽게 표현했다.



[Hook]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볼 땐

이렇게 사랑스럽기만 한데

그 눈이 잠시 날 피해 갈 때

난 낯설고 불안하기만 해

난 더 더 메말라가네


그의 입이 나를 표현할 때

좋아서 못 믿을 때가 있는데

같은 입이 날 괴롭힐 때

아무것도 난 할 수 없네

난 또 또 멍 해져만 있네



훅은 대비를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볼 땐 이렇게 사랑스럽기만 한데 그 눈이 나를 피해 갈 땐 낯설고 불안하기만 하다. 명확한 대비를 통해 수만 가지 비유 없이도 다툼 뒤의 감정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화자는 날 피해 간 눈 때문에 더 더 메말라간다. 어쩌면 텅 빈 속을 채우기 위해 물을 벌컥벌컥 마신 이유가 실은 그대의 '눈' 때문은 아니었을까.


눈을 지나 입으로 내려가는 시선의 이동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입이 나를 표현할 땐 좋아서 못 믿을 때가 있다. 하지만 같은 입이 날 괴롭힐 땐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날 괴롭히는 입 때문에 난 또 또 멍해져만 있다.



[PART C]


그와 헤어진 뒤엔 금방 잠들어야 해

그에게 붙여 놓은 내 맘 기다리지 않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내일이 올 수 있게



C 파트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헤어진 뒤'라는 가사 때문이다. 첫 번째는 연인 간의 관계가 종료되는 진짜 헤어짐. 두 번째는 다툼 뒤에 누군가 떠나간 일시적인 헤어짐이다. 나는 후자의 해석에 힘을 싣고 싶다.


화자는 오늘 그와 다툰 뒤에 헤어졌다. 그래서 오늘 밤은 금방 잠에 들어야 한다. 그에게 붙여둔 내 마음을 기다리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내일이 올 수 있게.


내가 후자의 해석에 힘을 싣고 싶은 이유는 C 파트의 상황이 큰 다툼이 아닌 연인 간의 사소한 다툼 후의 상황을 그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싸웠으니 연락을 하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마음을 먹는 상황. 일찍 잠에 들지 않는다면 '새벽 감성'이 나를 찾아올 테고 그렇다면 '여전히 사랑하는 당신'에게 붙여 놓은 내 마음이 이 새벽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나 혹은 그대가 그대 혹은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골치 아픈 사랑의 밀당을 생각하지 않고 내일이 올 수 있게 잠에 들겠다는 것이다. 이 또한 참으로 귀엽다. 어딘가 모르게 화해에 서툰 어린 연인들이 그려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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