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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ug 12. 2020

폐차장

그놈이 그놈이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


이별 이후의 수많은 연애 상담에 높은 빈도로 인용되는 연애 격언(?)이다. 너무나 예민한 사람인 나는 이 말이 정말 정말 불쾌하다. 듣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지가 뭔데 똥차니 벤츠니 판단하는 거야!


저 말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십분 이해한다.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치졸하고 더러운 연애 끝에 이마저의 자기 위안도 할 수 없다면 본인의 자존감이 버티기 힘들 테니까. 하지만 나는 저 문장 자체가 나쁘다기 보단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제 얼굴에 침을 뱉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별의 이유야 어찌 됐든 본인이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똥차라고 폄하하는 사고방식은 결국 자기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것과 다름없다. 뒤에 붙은 '벤츠 온다'가 비유의 측면에서 더 나은 사람을 기대한다는 뜻이긴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 명제는 어불성설이다. 내 시장 가치가 낮은데 어떻게 벤츠가 오겠는가. 같은 벤츠가 널리고 널렸는데.


더욱 문제인 점은 대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본인을 벤츠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너무나 재수가 없어서 하필이면 똥차를 만난 벤츠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똥차일 확률이 매우 높다. 정작 본인만 모를 뿐. 티코에 벤츠 앰블럼을 붙인다고 해서 벤츠가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백번 양보해 그들의 전 남자/여자 친구가 누구나 똥차라고 부를 정도의 쓰레기였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그들의 시작점에 의문이 든다. 중간 지점에도 의문이 든다. 왜 그들을 만났으며 왜 그들과의 연애를 지속해왔는가. 차량 점검의 기회는 수없이 많았다. 똥차인 걸 파악했다면 얼른 중고차 매매나 폐차를 준비해야지 왜 지금껏 줄곧 타고 다녔냐는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뚜벅이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낡은 기동성일지라도 무언가 하나라도 더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처음과 중간은 객관적으로 그리 똥차가 아니었을 것이다. 벤츠에 비해 가격이 낮았을 뿐 소나타도, 싼타페도 좋은 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벤츠가 압도적으로 뛰어남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 보다 더 높은 클래스의 차종도 꽤 많으니 말이다. 깔끔하지 않게 끝난 연애 뒤에 만난 사람이 그보다 못할 수 있을까? 결국 대비란 상대적이다. 대한민국의 도로교통 현황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여러분의 새로운 남자/여자 친구 또한 벤츠가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대부분은 현대-기아차일 것이다. 그저 내 입맛에 맞지 않아 한 순간에 똥차로 등급을 내린 이전의 연인들과의 상대성 때문에 그들이 잠시간 벤츠로 보일 뿐. 제조일자만 다른 소나타와 싼타페일 수도 있다. 벤츠는 언제든 똥차가 될 수 있다. 똥차 또한 어떤 차주에게는 벤츠가 될 수 있다. 마이바흐, 포르셰, 페라리가 될 수도 있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 말을 진리라 믿는 이들에게는 똥차만 다가온다. 똥차를 만난 안목을 통해 벤츠를 골라내겠다는 심보는 전혀 다른 공정 과정을 거쳐 벤츠가 된 순혈 벤츠남, 벤츠녀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이별은 이기적이다. 하지만 똥차를 폐기하는 과정에 있어 차량 결함을 떠넘기기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일수록 이를 판단할 수 있는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그렇게 그들은 구린내가 밴 폐차장이 된다. 본인만의 기준이 만든 똥차들은 실제로 똥차였든 아니었든 더 좋은 등급의 차종과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이 이들은 벤츠를 기다리다 폐차장의 간판을 건다.


한 때 참으로 벤츠 같다 여겨지던 그녀가 한 말이 있다. 나는 차라리 이 말이 더 정답에 가깝다고 느낀다.


"오빠, 그놈이 그놈이에요." 


누가 봐도 정품 벤츠라고 판단되는 사람들과의 연애를 즐기던 그녀는 나를 똥차로 만들었다. 그놈이 그놈이라면서. 나도 좀 태워주지. 그때의 나는, 나를 벤츠라고 착각했지만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나는 벤츠 보단 똥차에 가까웠다. 불현듯 두려워진다. 나를 거쳐간 그녀들은 어쩌면 새로 뽑은 벤츠들에게 나를 똥차라고 말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녀들 또한 똥차였을까. 모르겠다. 한때 나는 그녀들이 똥차였기를 바랬지만 지금은 나는 그들이 벤츠였다고 믿으려 한다. 어쨌든 우리는 각자 다른 차를 타기 시작했으며 아쉽든 아쉽지 않든 똥차들의 종착지인 폐차장까지는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내 운전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나와 맞지 않는 차량을 타고 다니다 보니 늘어난 운전 실력 때문에 더 고난도의 덤프트럭을 몰 수 있는 능력 있는 기사가 되었다고 말이다. 내 가치를 서너 단계 낮추는 폐차장의 주인이 된 그들이 아니라 연애에 있어 어떤 역경이든 깨부수고 달려 나갈 수 있는 강인한 덤프트럭의 기사. 나는 대형면허를 취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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