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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Sep 03. 2020

왜 내 꿈에 나왔니

쓰러진 팽이

결말을 보지 못하고 깼어. 아주 오랜만에 네가 등장한 꿈이었는데.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너는 내 전두엽 어딘가에 잠들어 있었나 봐. 프로이트의 말에 의하면 꿈은 무의식의 발현에 가깝다던데. 내가 너를 무의식적으로 원했나? 거의 다 잊었다고 생각한 네가, 정말 뜬금없이 오늘 내 하루를 망쳤어.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꿈이 원래 다 그렇잖아? 아주 짧게 파노라마를 그리며 '반드시 기억해야지' 했던 모든 게 눈꺼풀을 여는 순간 빠르게 지워지는 거. 꿈과 깸 사이 어딘가에서 허우적대다 이내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에 아쉬움의 한숨을 한 번 몰아쉬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3초 남짓의 그 짧은 시간 동안 꿈속의 너는 모조리 증발됐어. 어렴풋이 너와 함께 무언갈 먹던 모습만이 남아있네. 메뉴가 뭐였는지, 그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캄캄한 검은색이야. 아쉽다. 뭐가 아쉬운 건진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이 공허함이 여전히 이불처럼 내 온몸을 뒤덮고 있는 걸 봐선 우리는 꿈속에서나마 잠시 행복했나 보다.




몇 주간 꿈 없는 잠의 연속이었어. 아마도 내 삶이 바빠서였겠지. 너 또한 삶에 치여 지금쯤 나를 잊고 살지도 모르겠다. 너와 함께한 2년의 시간 동안 많이 괴로웠고 또, 행복했어. 내 마음을 모르는지, 애써 모른 체하는지 어떻게든 네 눈에 띄기 위해 매일같이 같잖은 허세를 부렸고 나와 비슷한 몇몇 남자들의 존재를 알았기 때문에 더욱 안간힘을 썼어. 그렇게 나는 까무룩, 네 일부가 되었지. 하지만 결국 완벽하게 소유하지는 못했어. 먹지 못하는 감, 찔러나 보지도 못하는 소심한 나는 먼발치에서 너의 행복을 기원하며 동시에 불행을 바랐어. 너는 감이 아닌 신포도였거든. 그게 내가 너를 끝끝내 쟁취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겠지.


잘 사는 거 같더라. 나만의 비밀이라고 착각했나 봐. 묻지도 않은 네 소식을 간간이 우리의 공통분모들에게 전해 듣고 있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구나, 했지만 바뀐 네 프로필 사진을 알리는 빨간 점은 단 한 번도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는 걸 걔네는 알까. 내가 착각한 비밀처럼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거겠지. 꿈같은 너와 현실을 깨닫게 하는 사람들. 둘 다 싫다. 내 꿈에 누군가 개입하고 있다는 게. 차라리 너처럼 나를 차단함에 넣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시선도 도벽이 아닌 그리움이 될 텐데.




언젠가 너무 무서워서 기록했던 꿈이 두 개 있어. 하나는 전쟁이 일어나 내 근처로 두 개의 커다란 폭탄이 떨어지는 꿈. 다른 하나는 대답 없는 너를 부르짖던 꿈.


너를 부르짖던 꿈은 너무나 생생했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오랜 시간 너를 볼 수 없는 곳으로 나는 일을 떠나야 했고 출발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너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어. 어디야? 나 이제 갈게. 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그렇게 나는 별생각 없이 훌쩍 떠났던 거 같아. 실제로 널 떠나고 싶어 해서였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리 슬프지 않았어. 1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안심이 되기도 했지. 


시간은 빠르게 흘렀어. 꿈이 원래 다 그렇잖아? <중경삼림>의 두 번째 이야기처럼, 스튜어디스가 되어 홍콩으로 돌아온 페이처럼 내 꿈속의 3년은 3초 만에 흘렀어. 나는 다시 우리가 살던 도시로 돌아왔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나에게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고 물었어. 나는 모르겠다고, 일단 집을 먼저 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 그 순간 불현듯 네가 떠올랐어. 메시지에 답장을 남기지 않았던 네가. 나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지. 어디야? 잘 지내? 너는 그때와 달리 곧장 답장을 보냈어.


그때 하고 싶었던 말, 지금 해봐. 


나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펑펑 울기 시작했어. 거의 실신하기 직전까지 울었던 거 같아.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황급히 달려와 그 연유를 물었는데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기 바빴어. 이러다 정신을 잃겠다고 생각했던 어느 찰나, 나는 예고도 없이 쑤욱 꿈에서 깼지. 현실의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몸에선 아무런 힘이 나지 않았어. 심지어 아프기까지 했지.


언젠가 예지몽과 같은, 루시드 드림과 같은 이 슬픈 악몽을 볼이 빨개질 때까지 떠들어대던 나를 웃으며 지켜보던 너를 떠올린다. 꿈 얘기는 하는 사람만 재밌고 듣는 사람은 지루하다던데. 너도 많이 지루했겠다. 이제는 그 내용을 기억할 수도, 전할 수도 없지만.


출근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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