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우 Oct 06. 2020

난 너를 몰라

찰칵? 착각!

문제는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한다는 거야. 봐봐, 오늘만 해도 그래. 나는 술안주로 과일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 오히려 짭짤한 마른안주를 좋아하지. 나와 같은 걸 먹고 싶다는 네 바람은 잘 알겠어. 근데 왜 내가 먹고 싶은 건 통과되지 못하는 건데? 사이좋게 청포도 옆에 믹스 너츠를 두면 되잖아. 단짠단짠. 이거 술자리 최강 조합인데.


넌 나를 몰라.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 했지만 우리의 27년보다는 짧은 기간이기 때문이지. 심지어 25년을 함께한 우리 엄마도 날 잘 몰라. 그러니 나도 너를 잘 모르겠지. 기껏해야 내가 아는 너는 라이더 재킷과 원피스를 좋아한다는 것,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 남동생을 귀찮아한다는 것, 영화를 조용히 본다는 것, 내가 올 때에 맞춰 빨래를 몰아서 돌린다는 것, 직장 생활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 교회에 나가지 않는 너 때문에 어머니가 속상해한다는 것 정도니까. 아, 그래도 꽤 많이 알고 있긴 하네. 흠흠. 어쨌든!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단 듯이 유행하는 말이 있어. 우리는 '틀린 게' 아니고 '다른 거'다. 나는 이 말이 참 모순적으로 사용된다고 생각해. 때때로 본인이 틀렸음을 부정하는 말로 완벽한 방어력을 갖춘 문장이거든. 사람들은 참 이기적이야. 누가 봐도 틀린 건데. 대체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거야? 그럼 서술형 문제나 논술 시험은 대체 왜 존재하는 건데. 정답을 판별할 수도 없는데. 논리가 부족하다고? 우리가 달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야!


그래서 나는 앎과 모름을 선명하게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건 비단 이성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 어쩌면 그저 감성만의 문제일 수도 있지. 우리의 긴 다툼에도 잠깐의 이성이 끼어들 틈이 있다면 삐- 부저를 누르고 "정답은 OO입니다!"하고 크게 외칠 수 있을 텐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잖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삭히며 나지막하게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라고 말하지만 결국 대화를 가장한 신경전은 같은 자리만 뱅뱅 맴돌고 있으니까. 또, 우리는 "내가 아는 너는"이란 말로 이 싸움을 마무리하니까. 대체 뭘 안다고.




나는 세상의 유일한 진리가 사랑이라고 믿어. 그리고 진리란 절대주의를 조금 어긋난다고 해서 설명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반례가 생기면 거짓으로 판명되는 과학과는 약간 다른 거지. 아, 물론 사랑도 과학에 포함되긴 하지만. 그건 잠시 제쳐두자고.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 내가 어제 엄마랑 작은 말싸움을 벌였어도 내가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진리가 훼손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각자 '다른' 마음으로 이해하잖아.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이 진리가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모두가 납득했으면 좋겠어. 엄마에 대한 사랑처럼, 너에 대한 사랑처럼 언젠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내 모습도 사실은 사랑의 일환이라는 걸 말이야. 초등학교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것을 정의도 이해하지 못한 채 수학적으로 암기했지만 과연 그건 진리일까? 더 뒤에 배운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르면 축구공에 그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에 미치지 못한다던데. 그럼 우리가 알고 있던 평면의 삼각형은 더는 삼각형이 아닌 게 되는 걸까. 아, 모르겠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다르다'는 건가.




난 너를 몰라. 그래서 철저히 내가 보고 듣는 것으로만 찰칵, 너를 찍어두지. 최대한 오래오래 비교적 사실에 가까운 모습으로 담기 위해서. 기록하는 것과 감상하는 것으로는 우리 사이에 명확한 팩트를 짚어내지 못하니까. 촬영, 녹음, 녹화되지 못한 흐릿한 말들은 대개 조금씩 왜곡되기 마련이며 심지어는 그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만드니까. 틀림과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고 끝없는 감정싸움으로 번지다 이내 먼저 지친 사람이 최후의 보루인 '다름'을 선언해야만 패배를 흉내 낸 승리를 거머쥘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다르다' 대신 '모른다'를 지지해야 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바꿔 말하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거든.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사랑은 그래서 우리 사이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정의하나 봐. 그러니 나는 눈을 감고 너를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사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