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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Mar 11. 2021

우리는 왜 사랑을 말하지 못할까

모든 문제의 원인은 '말'

잘 알고 있는 사랑을 말하는 건 내가 모르는 사랑을 느끼는 것만큼 어렵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란 단어의 정의조차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면서 툭하면 사랑의 가치를 두고 열띤 연설을 펼치곤 했다. 그렇게 나는 "뭐든 사랑이 우선이야. 사랑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야!" 따위의 형이상학적 외침들 뒤에 "그래그래, 네 말이 다 맞아"라는 표정을 짓는 청자들의 조용한 끄덕거림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첫 연애를 망친 이후부터 그랬다. 나는 사랑의 파괴적인 모습에도 탄복했던 것이다.


사랑을 모르던 때는 헤어진 연인 때문에 눈물짓는 사람들과 치정극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을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하고부터는 조금씩 달라졌다. 내 권역 안에 사랑이 없었을 때의 기억을 모두 잊은 것 마냥, 사랑이 없다면 세상엔 절대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사랑은 뭉뚱그리기 쉬운 가치였다. 어떤 사유에도 그 앞뒤에 사랑이 붙는다면 무한한 설득력이 생겼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상황도 사랑 앞에서는 무력해졌다. 사랑하니까.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사랑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심이 아니다. 그저 사랑에 낙담했거나, 실패했거나, 괴로워했기에 잠시간 회피를 택했을 뿐이다. 우리는 안다. 사랑이 없다면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다. 외로움을 마주 볼 용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랑이 너무나 단편적이라고 말한다. 연애의 대상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사랑이니 말이다. 하지만 연애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곧 연애가 되지 않듯이 말이다.


사랑은 수축하는 동시에 팽창하는 말이다. '단 둘'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더 많이, 자주 보이는 것이 사랑이다. 특히 애(愛)가 그렇다. 우리는 손쉽게 사랑을 광범위화한다. 전우애, 인류애, 지구애. 사랑은 확실하게 친구를, 국가를, 세계를 카테고리 안에 가두는 것이다. 어디에 붙여도 그럴듯하니 진리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 대상은 또 어떤가. 굳이 사람만을 사랑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동물을, 일을, 환경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랑이 너무나 포괄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걸 담아내다 보니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사랑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사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가까운 내 연인마저도, 가족마저도 이보다 더한 설명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사랑을 표현함에도 각자의 편견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왜곡한다. 그래서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진심은 때때로 대상에게 채 도달하기도 전에 괜한 오해를 산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섣불리 말하지 못한다. 그저 내 이야기 같다며 공감할 뿐이다. 이게 드라마가 잘 팔리는 이유다.


또한, 사랑은 생경한 감각이다. 사랑은 시간과 무관하며 사람과 무관하다. 사랑과 최대한 가까운 논리는 분위기에만 있다. 같은 데이트 코스를 방문해도,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어도, 같은 이유로 헤어져도 사랑은 매번 새롭기만 하다. 호감은 도파민에서 시작해 세로토닌으로 자리를 다진다. 그래서 '그냥 너무 좋다'라는 말 하나로 이전의 모든 기억들을 소각시킨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새살이 돋는다. 그냥이란 무의미한 변명인데.


나는 사랑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기에 우리의 눈을 멀게 한다고 생각한다. 자잘한 사랑의 경험이 쌓일수록 역치가 높아지는 사랑의 항상성이 내 눈을 뿌옇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말하고자 한다. 나는 사랑을 모른다고. 도저히 알 수 없으니 그저 모른다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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