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 시절 소중했던 남사친과 좋아하는 언니가 예쁘게 만나다 올해 코로나를 뚫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다. 20대 중반 이후로 소원해진 내 남사친과는 오히려 그의 엑스 여친인 언니와 내가 친해지면서 다시 사이가 회복되는 중이랄까. 언니와 나는 교회에서 양육을 하면서 친해졌다. 20대 중반 이후로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던 친구가 꽤 까탈스럽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사실 어떤 사람인지 인간적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을 때, 언니와 양육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에 다니며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상하리만큼 자신 있는 면접에도 여러 번 떨어졌다. 그렇게 마음이 메마르고 있을 때 언니와 시작한 양육. 하나님이 심어 놓은 삶의 의미를 언니와 함께 찾고, 나누며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 나는 내 과거의 삶을 반추할 때 '힘들었던 기억'이라고 명명하는 걸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때는 지금 생각해도 아린 맛 ver.이었던 것 같다.
언니와 삶을 나누다 울기도 하고, 또 삶을 반성하기도 하면서 쌓아가던 시간들. 언니는 묵묵하고 다정하게 내 시간을 함께 채워줬었다. 양육을 받으며 그간 내 오만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삶의 의미와 비전을 차차 찾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자연히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했다. 그게 벌써 작년 여름의 이야기가 됐다.
모든 것이 제한된 코로나 시국인데도, 그들의 집들이에 초대받으며 기쁜 마음이 들었다. 누구보다 내면이 단단한 언니와 야무진 내 남사친이 서로의 장점만 살려 가정 천국을 이뤄나갈 모습이 기대가 됐다고 해야 할까. 또, 나의 마지막 20대를 기억해주고 축하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집들이 날에는 눈이 내렸다. 모두를 위로하는 듯이 밤새 포근히 쌓인 눈. 부부의 살뜰한 연락을 받으며 그 눈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준비한 선물을 꼭 쥐고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