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끝, 바다의 시작

포르투갈의 바다 8. 호카(Roca)곶과 사그레스(Sagres)

by 헤나따

이탈리아의 단테,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포르투갈엔 까몽이스(Camões)가 있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일대기를 통해 포르투갈인들의 기상과 정신을 담아냈을 뿐 아니라, 16세기 이베리아 반도에 온갖 방언이 난무하던 시기에 가장 엘리트들이 쓰는 정제된 언어로 포르투갈어의 기초를 닦은 작가이다. 단테의 이탈리어가 그러했고, 셰익스피어의 영어가 그러했듯이. 유럽대륙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는 호카 곶에는 그의 작품 <루지아다스>에 나오는 구절이 새겨진 비석이 서있다.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다."



신트라 시내에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가드레일도 없이 여러번 굽이굽이 커브를 돌아 호카곶에 도착한다. 건물이라곤 하얀색 관광안내소와 노란색 카페 겸 선물가게, 한 가운데는 높은 십자가와 까몽이스의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있고, 옆에는 빨간 지붕의 등대가 전부인 곳. 아무리 무더운 한여름에도 이곳에는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자주 내리는 곳이다. 예측하기 힘든 거대한 바다를 끼고 있어서일까, 날씨도 예측불허. 이런 바다를 보고 살았으니, 지구가 네모낳고 바다 끝까지 가면 낭떠러지라고 믿고 살았다는 옛날 사람들이 이해가 가기도 하다. 한편으론, 이렇게 거칠고 거센 바다를 지구가 둥글다는 믿음 하나로 뛰어든 포르투갈 사람들의 호기심과 용기가 대단하다.


남쪽동네로 내려가면, 이베리아 반도의 남서쪽 귀퉁이쯤에 위치한 사그레스 땅끝마을이 있다. 이곳은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꼭지점이자, 항해왕자였던 아비스왕조 제 1대왕 동 주앙 1세의 넷째아들, 엥히끄 왕자(한국에는 영어식으로 헨리왕자로 알려져 있음)가 세운 항해학교가 있다. 사그레스를 아프리카 탐험을 위한 거점으로 삼고, 후계자 양성을 위해 학교까지 세운 그의 열정과 탐구심은 훗날 노예무역과 잔인한 식민지배라는 참담한 세계사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카스타냐 왕국과의 전쟁 끝에 국권을 되찾고 아비스 왕조라는 새로운 왕조를 갖게된 포르투갈. 그 시조였던 동 주앙의 아들이라 엥히끄의 형제들은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다. 일찍 죽은 첫째 형을 대신해 왕이 된 동 두아르트, 그의 동생들인 페드루, 엥히끄, 주앙, 페르난두. 이 형제들은 모두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적극적으로 아프리카 원정에 나섰다. 셋째 아들인 페드루의 칭호가 "일곱번의 출항의 왕자"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막내인 페르난두 왕자는 원정 사업 중 모르코의 페즈에서 포로로 잡혀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그들의 심정이 잘 이해되진 않는다. 현대사회로 대입해서 말하자면 달나라나 화성 착륙, 혹은 인공지능 개발 정도의 하이테크놀로지 과학 기술과 인간의 정복욕구의 결합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글쎄, 하긴 그 시절 엥히끄 왕자가 21세기의 나를 보고는 "왠 한국애가 포르투갈 문학을 공부하러 이 낯선 나라까지 와서 살지?" 하면서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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