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의 별

포르투갈의 바다 9. 아소르스, 떼르세이라(Terceira) 섬

by 헤나따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반도의 메인랜드 외에도 자치령인 마데이라(Madeira)와 아소르스(Açores) 제도가 있다. 호날두의 고향으로 마데이라는 꽤 유명하지만, 아소레스는 관광객이 적어 상대적으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있다. 3년 넘게 같이 산 하숙집 아주머니의 고향이 아소르스라 늘 가족들로부터 초대를 받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못 가보다가 한국에서 친동생들이 놀러 온다 하여 아소르스 행을 결정했다. 총 9개의 섬 중, 아주머니의 고향은 세 번째로 크다고 하여 이름이 '세 번째'라는 뜻의 떼르세이라(Terceira) 섬. 그곳에서 할머니가 친절하게 별채를 내어 주시어 머물게 되었다.


나를 사촌으로 대해주는 아주머니의 조카, 카타리나가 하루 시간을 내서 섬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 섬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육지의 포르투에서 관광학 석사를 하며 실제 가이드로도 일하고 있는 친구다. 포르투갈은 관광업이 중요한 국가산업이나 보니 관광 관련 학과가 인기도 많고 다양한 외국어 구사 및 역사적 지식 등 높은 강도의 고육을 시킨다. 카타리나도 아는 것 많고 문화와 역사를 존중하는 마음이 큰 청년이다. 친절하게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설명해주던 카타리나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근데 헤나따, 네가 떼르세이라 섬에서 꼭 알아둬야 할 게 있어.”

평소와 다른 어두운 표정에 괜히 긴장이 되었다.

“뭔데?”

“여름에 떼르세이라를 오면 언제든 바다로 뛰어들 수 있게 안에 꼭 수영복을 갖춰 입어야 한다는 것이야”

카타리나는 눈을 찡긋하며 자신의 티셔츠를 살짝 들어 안에 입은 수영복을 내보였다.

“맙소사, 내일부턴 당장 그럴게.”



나는 약속을 지켰다. 다음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으로 갔다. 화산섬인 떼르세이라는 모래사장의 모래가 검다. 백사장이 아니라 흑사장. 대서양 한가운데 발을 담그는 기분은 짜릿했다. 리스본 근교 바다보다 물 온도가 오히려 따뜻했다. 8월엔 해변축제가 열린다. 그야말로 하루 종일 해변가에서 맥주 마시고 낮잠 자고 수영하며 밤새도록 노는 축제이다. 다른 친척은 ‘그때 왔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하고 말했지만 내심 술을 별로 안 즐기는 나는 지금 한적할 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작은 섬마을은 꼭 8월의 해변축제가 아니더라도 기나긴 여름 내내 크고 작은 동네 축제가 끊이질 않는 곳이었다. 예전엔 티브이도 없고 즐길거리가 많지 않아 섬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공연하고 노래하고 즐길거리를 만들어내는 풍토가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신나게 해수욕을 하고 들어가니 동네에선 역대 포르투갈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장면들을 코스프레와 간단한 연극, 노래를 곁들여 재현한 퍼레이드가 한창이었다. 저 멀리 옥수수밭과 바다 뒤로 지는 노을을 배경 삼아 펼쳐지는 마을 사람들의 퍼레이드는 꼭 내가 동화 속 어느 섬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이 현실감이 없었다. 포르투갈에선 이런 비현실적인 기분을 꽤 자주 느낀다. 내가 이방인이라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건지, 여행을 한국보다 자주 할 수 있는 환경이라 그리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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