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이중생활

포르투갈의 바다 1. 리스본 근교 까르까벨루스(Carcavelos)

by 헤나따

포르투갈에 가기 전에는 여름이 싫었다. 덥고 습하고 짜증을 유발하고. 해수욕도 가서 즐거웠던 적이 없다. 사람에 치이고, 상술에 치이고, 차 막힌 기억뿐이다. 그러나 포르투갈에 와서 여름이 좋아졌다. 너무 좋아서 지금은 나중에 딸을 낳으면 이름을 여름이로 짓고 싶다. 여름의 해수욕이 얼마나 상쾌하고 짜릿한지, 향수병이 나을 정도였다.


7월 한 달 동안 포르투갈어 인텐시브 코스 수업을 들었을 때의 일이다. 월화수목금 하루에 세 시간씩,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수업이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가까운 나라부터 미국이나 중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나이도 각양각색, 막 대입 고시를 마친 친구부터 남편과 자녀를 두고 혼자 한 달간의 자유시간을 만끽하러 온 주부도 있었다. 끝나면 첫째 주엔 서로 서먹해서 다들 집에 가기 바빴는데, 두 번째 주부터는 같이 점심을 먹기 시작하더니, 셋째 주엔 다들 수업 끝나면 다 같이 통근 기차를 타고 바다로 갔다. 여름이면 리스본 시내에서 까스까이스로 가는 해안열차를 타고 해수욕을 가는 사람이 많아, 철도청 측에서 아예 여름 한정판 해수욕 정기권을 팔기도 했다.


여름의 포르투갈은 오후 3-4시 경이 해가 가장 뜨겁다. 차라리 더울 땐 실내보다 바닷가가 더 시원하다. 대서양 바다가 바로 몰아치는 리스본 근교 해변은 바닷물이 얼음장처럼 차갑기 때문이다. 아침엔 교과서를 꺼내던 가방에서 비치타월을 꺼내고 그대로 입고 있던 겉옷만 벗으면 이미 속옷 대신 입고 온 수영복이 짠하고 나온다. 모래 위에 누워 몸을 위로 아래로 따끈따끈하게 굽다가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하면 얼음장보다 차가운 대서양 바다에 몸을 담근다. 선크림은 미용용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필수로 발라야 한다. 화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 가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된 약이 후시딘류, 타이레놀류, 그리고 화상 약이니, 이곳 태양이 얼마나 자글자글 위험한지 알 수 있다.


리스본 시내에서 기차로 25분이면 까르까벨루스(Carcavelos)에 도착한다. 시내에서 가까울 뿐 아니라, 해수욕장이 널찍하고 파도도 세게 치지 않아서 많은 현지인들이 찾는다. 다만 주말에는 사람이 너무 많을 수 있다. 밥 먹고 동네 마실 나가듯 해변에 가는 사람들이니 그럴만하다. 그렇지만 한국처럼 파라솔을 자릿세 받고 대여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다만, 아이스께끼 아저씨처럼 간단히 맥주나 이들이 해변에서 먹는 베를린 빵(도넛 같은 빵 안에 계란 크림이 들었는 빵)을 파는 상인들은 볼 수 있다. 주의사항 : 한국처럼 해수욕장 근처에 옷을 갈아입을만한 곳이 마땅치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속옷 대신 수영복을 챙겨 입고 온다. 아니면 큰 비치타월로 친구가 둥글게 말아 중요부위만 가려주고 그 안에서 오밀조밀 갈아입기도 한다.


나는 7월까지만 그렇게 오전은 학교, 오후엔 해변 이중생활을 하다가 8월부터는 본업으로 돌아와 공부에 매진하고자 했다. 전혀 알지 못했다. 8월엔 학교 도서관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7월의 이중생활은 워밍업에 불과했고, 8월엔 교수부터 빵집 아줌마까지 본격적으로 해변에서 여름을 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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