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겉보기에는 사춘기를 겪지 않았는데, 그것도 부모님이 좋게 기억해주셔서 그렇게 미화된거고, 늘 시골에 산다는 컴플렉스 때문에 엄마 아빠에게 앙칼지게 대하고 못된 말도 많이 했던 것 같다. 사춘기를 겪으며 내 나름의 방황으로 기숙사 학교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사생활이 없는 대가족 사이에 살면서 언제나 나만의 공간을 갖고 독립하고 싶다는 마음과 더 많은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처음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 엄마는 그 때 병원에 계실 때라 나랑 아빠랑만 차를 타고 대구에 있는 학교로 갔다. 그 땐 한창 사춘기라 지금처럼 아빠한테 살갑게 대하지도 않았고, 아빠도 처음 키워보는 사춘기 딸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서투셨을 때인데, 그렇게 어색하게 한시간 쯤 차를 타고 갔다.
내리기 직전에서야 아빠가 한 마디를 하셨는데, 별 것도 아닌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제 니 고생 시작이다"
기억이란 게 정확하지 않아서 그 때 고모가 같이 갔었는지, 아니면 아빠랑 둘만 갔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아빠가 저 말씀을 하셨을 때만은 차에 우리 단 둘이었던 같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도 아니고, '공부 열심히 해라'도 아니고, 꼭 누구 집 남의 딸 이야기하시 듯 툭.
거칠고 무뚝뚝한 아빠의 말 속에 느껴지던 나를 향한 진심. 어리고 여린 딸이 앞으로 겪어야 할 차갑고 시린 세계. 또 내가 커 갈수록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점점 적어지는 서운함. 아빠는 내가 '화이팅!'이라는 단지 희망에 찬 구호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나름의 혹독한 시간을 보내리라 알고 계셨던 거다. 또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그런 선택을 하는 나의 기질도. 그렇기에 그 무심한 말이 오히려 "사랑한다, 우리 딸. 여기에서도 언제나처럼 결국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라는 말로 굳게 들렸다.
아직도 삶의 굵직한 시작들 앞에서 심호흡을 하면 아빠의 음성이 들려온다. 드라마의 회상씬이나 나래이션처럼. "지은아, 이제 니 또 고생 시작이다" 그러고 나면, 딸의 선택을 이해해주고 딸의 고생을 위해 당신의 수고를 마다않는 늘 든든한 지원군이 세상에 한 명 있다는 진실에 안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