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빠에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나따 Dec 05. 2019

내가 자전거를 못 타는 이유



내가 자전거를 못 타는 이유는 대한민국 현대 경제사의 아픈 사건과 연관이 있다. 처음엔 막연히 워낙 시골에 살아서 같이 자전거를 타고 놀 친구가 없어서 그렇다고만 알고 있었다. 동생들은 그래도 한 명씩 또래 친구가 있어서 같이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녀서 자전거를 탈 줄 안다고만 믿었다. 그 막연한 무지의 믿음이 배신감으로 돌아온 건 동생들이 모두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왜 아빠는 나만 자전거를 안 가르쳐주신 것일까? 처음 키워본 자식이라 육아 노하우가 부족해서? 내가 유독 운동신경이 없어서?

자전거에 관하여 동생들과 나의 차이를 추리해보면, 아버지의 직업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내가 보조 바퀴를 떼야할 즈음엔 아버지가 직장을 다니고 계셨다. 그리고 1997년 IMF의 여파로 그 이듬해였던가,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가 문을 닫았고, 아버지는 모르긴 몰라도 내 보조 바퀴 자전거를 떼주고 자전거를 잡아주는 일 보다 더 중요한 생각과 고민으로 하루가 천근 같으셨을 것이다.


내가 소위 “IMF 키즈”라는 걸 대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2010년대 부터 이 세대에 대한 세대담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장에 집착하는 세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 저축보다는 현재의 즐거움에 차라리 투자하는 욜로(YOLO)족을 유행시킨 세대. 한편 부모님은 베이비붐 세대에 어릴 적엔 지독한 가난을 겪었고(심지어 극복하셨고) 대한민국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격변의 시절을 지나오셨다(심지어 주도하셨다). 엄마는 나를 낳으시고, “이 아이들이 사는 시대는 얼마나 장밋빛일까!” 생각하셨다고 한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동네 축제에 가셨다가 경품으로 자전거를 타셨다. 오랜만에 고향집에 내려갔더니 아버지는 들뜬 표정으로 경품 당첨을 자랑하시며, “자전거 니 함 타라”하며 위풍당당히 생색을 내시었다. “아빠, 나 자전거 탈 줄 모르는데?”했더니, 아버지는 매우 깜짝 놀라시며 “니 자전거 못 타나?” 하셨다. 내가 대학 원서 낸 것마다 죄다 똑 떨어져서 재수를 한다고 했을 때도 저런 표정을 보이진 않으셨다. ‘나이가 스무 살이 넘은 내 딸이 자전거 하나도 못 타다니! 쟤가 인생을 헛살았나.’ 하는 충격에 휩싸인 표정이었다.


비록 IMF 때문에 자전거는 못 배웠지만, 수혜 받은 바도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교내외 글짓기 대회는 매해 나갔는데, 나가서 아빠와의 추억을 쓰기만 하면 백발백중 상을 받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스밴드의 <오락실>과 같은 페이소스가 내 글에서 느껴졌던 것이 아닐까. “오늘의 뉴스/ 대낮부턴 오락실엔/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두르시는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 아빠”라는 가사와 ‘1월 1일 새해 첫날 새벽에 엄마 몰래 두 딸을 깨워 동네 뒷산에 일출을 보러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우사에 들러 소여물 주려 쌓아 뒀던 지푸라기로 손 녹일 불을 때다 보니 짚에 붙어있던 쌀 튀밥까지 나눠 먹게 되었다’는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이의 산문은 어느 정도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다. 그게 사실은 한 날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든가, 사실은 그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라든가 정도의 편집점은 있을지 몰라도 순수한 아이의 눈으로 본 실직된 가장의 무게와 대한민국 경제 위기를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 가히 가작 정도는 받을만하지 않았느냐고 훗날 평가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