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판 로미오와 줄리엣-알코바싸

포르투갈 유네스코 마을 여행

by 헤나따

포르투갈과 영국은 역사적으로 우호국이었다. 제2 왕조인 아비스 왕조의 초대 왕, 동 주앙 1세의 아내가 영국에서 온 도나 필리파 드 렝카스터(D. Filipa de Lencaster)였는데, 이때 영국군과 포르투갈군이 연합하여 스페인을 물리친 이후로 두 국가의 우호관계는 지속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포르투갈의 공주, 영국의 왕비'라는 별칭의 도나 까타리나(D. Catarina)는 차문화와 마멀레이드를 영국으로 전파한 인물이기도 하다. 나폴레옹의 이베리아 침략 당시에도 영국군이 지원을 와서 함께 싸웠으며,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에 맞서 영국으로 몰래 포르투와인 등을 수출하기도 했던 나라가 포르투갈이다. 이 두 국가의 우호관계는 아프리카 식민지를 두고 포르투갈이 장미 정책으로 영국과 대립하여 영국이 '최후통첩'을 날리기 전까지는 꽤 돈독하였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영국에 영향을 주었다고 믿는 또 다른 한 가지가 바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포르투갈 14세기 왕자와 시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로맨스에 영감을 주었다고들 한다. 은근 "국뽕"이 심한 포르투갈 사람들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 오고 또 제아무리 비슷한 이야기여도 언제 들어도 재미있으니, 지금까지도 이들의 이야기는 현대판 영화와 소설로 각색되곤 한다.


페드루 왕이 아직 왕자였을 때, 부인으로 콘스탄사(Constança) 세자비를 맞이하지만 정작 그가 한눈에 반한 이는 아내의 시종인 이네스(Inês)이다. 둘은 신분 격차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다가 행운인지 불운인지, 콘스탄사가 일찍 죽게 된다. 세자비가 죽었으니 둘은 합법적으로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사별한 전처의 처가에서 혹여나 자신들에게 정치적 불이익이 될까 하여 이네스에게 끈질기게 자객을 보내어 암살을 시도한다. 페드루는 암살자들로부터 자신의 연인을 보호하기 위해 이네스를 포르투갈 산지로 옮겨 다니며 피신시키지만 결국 세명의 자객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네스 사후에 페드루는 다른 정실부인을 맞기는 하지만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여인은 이네스라며, 자신이 죽은 후 이네스를 왕비격으로 자신 옆에 묻어줄 것을 명한다. 그 두 사람의 무덤이 있는 곳이 이 알코바사 수도원이다.


바딸랴 수도원에서 30분, 차를 몰고 가면 바딸랴 수도원보다 한층 차분하고 심플한 수도원이 있다. 근처에 '알코아' 강과 '바싸'강이 흐른다고 하여 '알코바사(Alcobaça)' 수도원이라 불리는 곳이다. 내부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너무 깔끔하고 휑한 모습에 다소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12세기 프랑스 시토 수도회 수도승들이 검소하고 청빈한 정신을 살려 장식을 최소화하여 지은 성당이라 그렇다. 천장까지의 높이가 20미터로, 포르투갈 수도원 중에서는 가장 천장이 높은 성당이라고 한다.



휑하다 싶을 정도로 심플한 성당 내부를 제단까지 걸어오면, 이 성당에서 가장 오밀조밀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페드루와 이네스의 무덤이 보인다. 이네스의 무덤에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페드루의 무덤에는 이네스와의 생전에 행복했던 추억의 일대기를 조각해두었다. 일부는 나폴레옹 침략 당시 훼손되기도 하였다. 무덤을 지탱하고 잇는 원숭이처럼 생긴 흉측한 생물체는 이네스를 암살코자 했던 세명의 암살자이며, 그들에게 사후에 영원토록 무덤을 이고 지는 형벌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왕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던 애인이 죽어서나마 천국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왕의 마음이 무덤의 조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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