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화려하고도 평범한 얼굴-토마르

포르투갈 유네스코 마을 여행

by 헤나따

현대의 상식으로는 교회를 다니는 형제님 자매님들이 자체 군대조직을 만들어서 활동한다고 하면 매우 이상하고 별로 어울리지도 않지만,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중세시대에는 종교조직을 중심으로 정치도 하고, 경제활동도 하고, 군사활동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나 보다. 포르투갈의 건국 초기 과정을 살펴보면, 포르투갈 국토에서 북부를 중심으로 남하하며 이슬람인들을 물리치면서 지금의 국경을 확보하는데, 이를 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 운동(Reconquista)라고 한다. 이 운동은 별개로 이루어지고 있던 십자군 운동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프랑스 등지의 기사들과 협력하여 '종교'를 명분으로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그 당시에 들어온 십자군 중에 템플 기사단도 있었는데, 그들이 기지로 삼고 수도원을 지은 곳이 토마르(Tomar)였다.


토마르 수도원에서 가장 초기에 지어진 기사들의 기도실.


무역업 등으로 부를 쌓으며 이단이라는 지목을 받아 교황청에서 템플 기사단의 해체를 요구하자, 당시 포르투갈 왕인 동 디니스(D. Dinis)가 템플 기사단을 포르투갈의 인적, 물적 자원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리스도 기사단(Ordem de Cristo)'라는 새로운 기사단을 만든다. 그리고 이 기사단은 후대 아비스 왕조에 들어 아프리카 등지로 해외 영토 확장을 하는데 앞장서게 된다. 이러한 역사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곳이 토마르라는 작고 고즈넉한 동네의 화려한 '그리스도 기사단 수도원'이다. 12세기에 최초로 지어져 이후 여러 세기를 거쳐 증축되어, 한 수도원 안에서 살펴볼 수 있는 건축 양식도 비잔틴 양식부터 고딕 양식, 그리고 포르투갈만의 장식적인 후기 고딕 양식 중 하나인 마누엘리누 양식까지 다양하다.


토마르 수도원에서 가장 유명한 <마누엘리누 창문>


회랑 한가운데는 템플 기사단의 대표 문양인 십자가 모양의 작은 탑이 있다.



토마르라는 작은 동네에 이렇게 큰 규모의 수도원이 있었으니, 동네에서는 수도원이 가장 부유하고 가장 번화한 곳이었을 것이다. 수도원 뒷문에는 항상 음식을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순례객들이 하룻밤 묵어가기에도 이렇게 으리으리한 수도원만 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이 화려하고 웅장한 수도원의 한 귀퉁이는 항상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 들과 청빈한 순례객들을 위해 간단한 빵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 있다. 중세 및 근대 초반에는 하수도 시스템이 거의 전무하여 식수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 수도원에는 우물 등의 시설로 식수가 풍부하여 수도원에서 마을 사람들이 물을 받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가운데 낀 시대'라는 의미의 '중세(Middle Age)'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인본주의가 다시 흥한 이후로 중세는 어둠의 시대, 종교가 지배하고 인간보다 신이 우선시 되던 시대라며 조금은 부정적으로 표현되곤 한다.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종교가 침략의 명분으로 이용되거나 종교적 이유로 정치적인 결정에 개입을 당연시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뿐더러 때론 후진문화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인간을 향한 최소한의 따뜻한 마음과 인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다시금 듣는 이를 겸손케 한다. 어느 시대나, 그것의 이름이 종교이든, '무슨무슨이즘'이란 이름의 이데올로기든, 세상을 지배하는 듯한 거대담론이 있지만, 그 거대서사 안에는 빵을 굽고 밥을 지어 사람들과 나누고 조금씩은 손해보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Tip: 앞서 소개한 바딸랴, 알코바싸와 함께 토마르는 파티마에서 가깝다. 파티마는 순례객들을 위한 저렴한 호텔이 많으므로 파티마에서 지내며 파티마도 구경하고 근처에 위치한 세 문화재를 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대중교통 등으로는 가기가 힘든 시골지역이라 택시 대절 등을 통해 관광할수 있다. 각 수도원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세 수도원 패키지 할인표도 판매한다.





keyword
이전 12화포르투갈판 로미오와 줄리엣-알코바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