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는 말의 긴 팔 - 벨렝

by 헤나따

그대는 지금 그 나라의 강변을 걷는다 하네

작은 어깨가 나비처럼 반짝이겠네

뒷모습으로도 내게로 오는 듯 눈에 밟혀서

마음은 또 먼 통화 중에 긴 팔을 내미네

그러나 바람 아래 바람 아래 물결

그립다는 말은 만 리 밖 그 강물에 끝없네.


-<그립다는 말의 긴 팔>, 문인수




문인수 시인의 저 시를 읽으면 '그립다'라는 단어의 마지막 모음 'ㅏ'에서 가로로 삐져나온 작대기가 마치 팔을 길게 뻗고 내게 어깨동무하는 것 같다. 어느 나라의 어느 강변을 두고 쓴 시일까. 그것은 시인만 알고 어쩌면 시인도 모르겠지만, 나는 리스본의 떼쥬 강변을 걸을 때 마다 이 시가 생각난다. 아마 '그립다'라는 말이 포르투갈의 국민 정서인 'Saudade(싸우다드)'와 비슷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정'이나 '한' 같은 단어처럼, 포르투갈에도 외국어로는 쉽게 번역하기 힘든 자기들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싸우다드'이다. 일반적으로 '강한 그리움'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만, 그 그리움의 대상은 이미 떠나 보낸 과거, 아직 갖지 못한 미래의 꿈, 현재에 부재하는 어떤 대상 등등 매우 철학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배를 타고 생계를 유지하고, 해외원정사업이라는 국가사업에 뛰어들며 '바다'라는 공간은 포르투갈의 정치, 역사, 문화, 경제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먼 바다로 나가면 언제 돌아올지, 살아서 돌아올수는 있을지 이런 것들이 막연하기 때문에 집에서 뱃사람을 기다리는 여인이나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싸우다드'의 정서를 갖게 되었고, 이것이 포르투갈 문학에서 자주 차용되는 주요 정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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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떼쥬강변을 따라 한 40분쯤 서쪽으로 걷다보면 벨렝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대서양과 떼쥬강이 만나는 곳이자,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들이 출발했던 곳이고 도착했던 곳이다. 멀리 새로운 대륙을 찾아 떠날 때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기도를 받고 떠났다. 해외 원정 후 전리품이나 각종 해외 향신료 및 금은 보화를 갖고 의기양양하게 귀향했을 때도 세관이었던 벨렝 탑에서 멈추어야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이후로는 지진으로 황폐화된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벨렝에 왕이 거주하게 되었고(아주다 궁),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국가 원수가 일하는 곳이 벨렝이다. 정치, 경제, 종교를 대표하는 가장 기념비적인 건물들이 모여있다고 할 수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 탑은 특히 세계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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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니무스 수도원 안에는 성당 내부에 포르투갈의 영웅적인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Vascmo da Gama)와 16세기 대표적인 서사시인 까몽이스(Camões)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까몽이스는 시인이기 전에 실제로 항해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어 그를 바탕으로 바스코 다 가마의 일대기를 신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그 작품이 <루지아다스>이다. 수도원 내부에 들어가면 회랑의 절반 쯤 지날 때 페르난두 페소아의 무덤도 나온다. 무덤에는 그가 이명(페소아의 필명은 '이명'이라고 부른다. '동인이명'에서 나온 말이며, 영어 Heteronym의 번역어이다)으로 사용한 여러 이름이 새겨져 있다. 페소아는 백개가 넘는 이명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썼지만,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의 본명(Orthonym)으로 쓴 <메세지>라는 시집에는 포르투갈 역사와 영웅들을 시적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영웅들의 절반 이상이 항해에 참여했거나 해외원정을 기획한 탐험가와 왕, 왕자들이다.




페소아의 대표적인 전원주의 이명인 알베르토 까에이루의 시는 떼쥬강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중략) 떼쥬강은 세계로 뻗어나기기 때문에/ 떼쥬강 너머에는 아메리카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발견한 부귀영화가 있다."

사실 이 시는 그런 떼쥬 강보다 자기 동네의 소박한 이름없는 강이 더 아름답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까에이루의 저 싯구를 통해 포르투갈 사람들이 테쥬강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 수 있다. 스페인에서부터 흘러 내려와 리스본을 따라 흐르다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떼쥬강은 어찌보면 그 자체가 포르투갈 역사의 메타포이다. 떼쥬강은 저멀리 아메리카까지 닿은 대서양을 향해 그립다는 말의 긴 팔을 내뻗으며 흘러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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