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따라 가면 높은 산

포르투갈 시골마을 여행 - 제레스

by 헤나따

소설 <파이 이야기>로 유명한 캐나다의 소설가 얀 마텔의 소설 중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소설이 있다. 세 명의 각기 다른 사연의 주인공들이 상실을 계기로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여행을 간다는,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을 사용한 이야기이다. 소설 속 주인공 중 한 명은 두 주 동안 아내와 아들, 아버지를 모두 잃고 그 충격에 뒤로만 걸을 수 있게 된다.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가 버무러진 이야기인만큼 "높은 산"이라는 제목도 일종의 판타지적 요소이다. 작가는 실제로 포르투갈에 거주하기도 했다는데, 캐나다 출신 작가에게 포르투갈의 산들이 딱히 높아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실을 치유해줄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높은 산'이라는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의 이름은 '작은 산'이라는 뜻의 "몬떼지뉴(Montesinho)"이다.)


포르투갈의 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비교했을 때 평지 지역이 훨씬 많다. 산은 주로 스페인과의 국경 지역에 있다. 우연이 아니라 산을 중심으로 문화와 언어가 달라지고, 국경이 그어졌으니 그럴 것이다. 내가 간 곳은 얀 마텔의 소설에 나오는 지역에서 서쪽으로 더 가면 나오면 제레스(Gerês)라는 국립공원이다.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는 산악 자연 보호 구역이다.


이 곳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포르투갈에서 휴양지로 유명한 알가르브의 파루(Faro)에 갔을 때, 파루 출신 친구의 가족들이 매해 여름이면 제레스에 휴가를 간다고, 정말 좋은 곳이니 다음에 꼭 가보라고 하셨을 때 였다. 휴양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휴가로 가는 곳이라니, 어떤 곳일지 너무 궁금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독일에서 여행 온 커플을 공항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도 그 커플은 6년째 여름이면 제레스로 휴가를 간다고 했다. 더더욱 가보고 싶었지만 차 없이는 가기 힘든 곳이라 못 가고 있다가, 포르투갈을 떠나기 전 친구가 귀국 기념으로 여행을 제안하고 운전까지 해주어서 가볼 수 있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가면 이렇게 산 지형과 강을 볼 수 있다. 이곳은 포르타벨라(Porta Bela) 전망대. 마치 한국의 강원도를 연상시키는 곳. 한국인들에겐 친근한 풍경이지만, 포르투갈에는 산이 많이 없기 때문에(특히 나처럼 리스본에 살던 사람에게는 더더욱)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풍경이었다. 어쩐지 애국가 3절을 불러야 할 것 같은 파란 가을 하늘과 청명한 날씨였다. 무엇보다 한국과 비슷하게 느낀 점은 북부에 산지인 만큼 한국과 비슷한 활엽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이면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갔을 때는 아직 여름에 가까운 9월이라 노릇노릇한 단풍은 보지 못했지만 대신 들꽃과 포도 같은 과일 열매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장소를 조금 옮기면 깨끗한 계곡물에 갈 수 있다. 군데군데 폭포 명소가 있다. 아라두(Arado) 폭포에 가서 강물에 수영도 좀 하려고 했으나 생각보다 물이 많이 차가웠다. 계곡 옆에 가부좌 틀고 명상하시는 도인은 세계 어디나 만국 공통인가보다. 조금 특별했던 점은 다리 위에 산양이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닌다는 것. 산양은 인간은 본체도 않고 유유자적 걸어오더니 나무 밑 그늘에 자리를 잡고 낮잠을 잤다.



산양 뿐 아니라 이렇게 도로에 야생마들도 지나간다. 말들을 피해 천천히 운전을 하며 우리가 향한 곳은 스페인 국경지역이다. 1.5유로의 통행료를 내고 국경 지대를 지나 10분쯤 달리면 로이부스(Loiobs)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곳에는 노천온천이 있다. 한켠에는 뜨거운 온천수가 나오는 야외 풀이 있고, 그 옆의 널찍한 개울에는 온천수와 차가운 계곡물이 만나 적절한 수온이 만들어진다. 포르투갈에서 노천 온천이라니, 찜질방의 나라에서 온 나에겐 너무나도 반가운 곳이다. 포르투갈에도 몇몇 군데 천연 온천이 있지만, 이곳에서 온천은 의사의 처방을 받고 치유의 목적으로 가는 곳이라 입장이 한국보다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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