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바꿔 먹기

by 헤나따

2016. 08.


학기 시작은 당장 다음 달 중순인데, 합격 발표도 너무 급하게 나고, 포르투갈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인터넷 한인 커뮤니티도 거의 없다. 나처럼 박사나 석사과정을 밟으러 간 선배 역시 없다. 몇 분 계시다곤 얘기를 들었지만 그마저도 15년은 더 된 일이었다. 막막하다. 어렸을 때부터 청개구리 기질이 있어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어도 남들이 안 먹는 걸 골라 먹는 기질이 있었다. 대학 진학도 그런 마음으로 포르투갈어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포르투갈 문학을 공부하러 포르투갈에 진짜 가다니. 이렇게까지 정말 아~~~ 무도 안 가는 길을 선택하고 싶진 않았는데.



서울에서 합격 메일을 받고 기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 말씀, "아이고... 이거 축하할 일 맞나?" 서운한 마음이 아예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머니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고생할 게 뻔한 길, 그렇다고 지원을 맘껏 해주지도 못하는 당신의 형편.



준비하다 보니 석사 논문 쓸 때가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때는 공부에 푹 빠져서 몰두하는 재미라도 있었다. 인문학 박사를 하려고 보니 제일 큰 문제는 돈이었다. 유학 자금이며, 가서 체제비, 학비 이런 것을 어떻게 마련할지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나마 학비가 비싸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언제까지고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고. 장학금을 따기는 하늘의 별따기. 진짜 문제는 이 재정문제가 단순히 몇 달 버텨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학을 선택한 이상 평생 나를 따라다닐 문제라는 것이었다.






문득 학부 마지막 학년, 지금의 지도교수님과 식사를 하며 '저 대학원 가고 싶어요!' 했을 때가 떠오른다. 책으로 치면 밑줄을 그어두고 일기장에 옮겨 쓴 문장들처럼, 나중에도 오래오래 기억에 맴도는 장면 중 하나. 대학원 가고 싶다는 나의 말에, 교수님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으시며 (스파게티 집이었다), "네가 문학을 하면 두 가지를 포기해야 해. 돈과 결혼."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나의 지도교수님은 제자인 내가 보기엔 돈과 결혼 모두 갖추신 분이셨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걸 감안하고도 너는 이 길을 선택할 거야? 하는 내 진정성을 보고자 하는 일종의 시험이었을 수도 있고, 장밋빛 미래만 꿈꿨다가는 상처 받을지 모르는 제자에게 준 예방접종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할 수 았어", "긍정의 힘" 이런 말들이 너무 가볍고 무책임하게 느껴지고, 차라리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이런 말들이야말로 나를 진정으로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선생님 역시 그 길을 걸어오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부분이 그 두 가지 셨기에 제자에게 그런 말씀을 해주신 것 같다. (물론 여기서 결혼이란 정말 제도로써의 결혼도 있겠지만, 이 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함으로써 누군가에게 깊이 이해받고 공감받기가 어려워졌다는 관계적 의미도 포함되어있다. )



그러나 나는 꽤 오랫동안 소돔이 망할 때 뒤돌아보면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린다는 저주를 들은 롯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머뭇거리게 되었다. 마치 돈과 결혼이 내가 문학이라는 '엿'과 바꿔먹은 엄마의 낡은 반지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애초에 나는 돈도 없었고 결혼도 안 한 상태였는데, 내가 문학을 선택하지 않았어도 가난한 미혼으로 살 수도 있었는데, 마치 문학을 선택해서 나는 이제 치열하게 생계와 싸워야 하고 결혼으로부터도 너무 가버렸다는 이상한 피해의식. 이걸 버리기까지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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