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화에서 계속 됩니다)
학교 문제는 한 일주일 후에 꽤 싱겁게 해결되었다. 학과장 교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더니 그분의 메일 한 번으로 상황 정리. 시차 때문에 복잡했던 은행 업무도 급한 마음에 어찌어찌 찍은 허접한 인증샷으로 해결이 되었다. 역시 교수 파워로 행정일 처리되는 건 만국 공통인가, 싶기도 하고, 포르투갈은 여러모로 행정이 느리고 또 그만큼 허술하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한 시름 놓았더니 이제 다음 라운드. 집이었다. 빈집이 없었다. 최근 독일과 프랑스, 영국 같은 서유럽에 테러가 여러 차례 터지면서 보다 안전한 남유럽으로 전 세계 교환학생들이 몰린 탓이었다. 오래 리스본에 살거라 집은 꼭 두 눈으로 확인하고 구하고 싶은 마음에 와서 구해야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집 구하는데 거의 3주나 걸릴 줄은 몰랐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충 위치와 가격을 보고 전화로 방문 약속을 잡고 하루에 두세 개씩은 보러 다녔다. 전화는 거의 80군데 했고 보러 간 집은 25채 정도 되는 것 같다. 황당했던 경우가 꽤 잦았는데, 예컨대 4시에 약속을 잡아서 대문 앞에 도착하고 문 열어달라고 전화를 했더니 오늘 10시에 집이 나갔다는 대답이 돌아올 때. 당장 입주가 가능하다고 해서 보러 갔더니 나처럼 집을 보러 온 외국인이 10명쯤 있고 막상 집에 들어가 보니 아직 공사 중이고 가구도 안 들여놓은 경우도 있었다. 내가 맘에 든다고 토요일에 연락 주겠다고 사람 마음 들뜨게 해 놓고 결국 내가 먼저 전화해 보니 다른 사람을 구했다고 아줌마도 있었지. 이미 눈은 낮출 대로 낮춰서 이제 월세도 비싸도 되고, 학교에서 멀어도 되고, 다 된다. 잠만 잘 수 있으면 된다. 제발.
집을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학교고 뭐고 정말 집 없어서 한국 가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번 집도 허탕 치고 돌아가는 길에 또 눈물이 났다. 하.. 온 지 얼마 됐다고 이렇게 울 일이 많은 거지. 대낮에 길바닥에서 우는 게 너무 부끄러웠지만 그냥 울면서 걸었다. 엄마랑 전화를 했는데, 엄마가 걱정 말라고, 3일 안에 집 구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엄마 나 몰래 어디서 점괘라도 보시나? 그 단호한 확신에 찬 말투에 어쩐지 신뢰가 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9월이었는데 이상 기온으로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뉴스에선 연신 날씨가 너무 덥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한국에서도 유난히 덥고 지독한 여름을 보냈는데, 포르투갈 와서도 이리 덥다니. 누가 복날에 나한테 더위라도 팔았나. 그런 날에 날마다 도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방을 보러 다니다가 녹초가 되어 호스텔에 돌아와서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같이 방을 쓰던 독일인에게 '나 집을 못 구해서 홈리스야' 했더니, 그 친구가 '넌 호스텔에서라도 잘 수 있으니까 홈리스가 아니야. 난 어제까지 진짜 돈이 한 푼도 없어서 길에서 이틀 동안 잤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오 이것이 진정한 유러피언인가?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벼룩에 잔뜩 물려있었다. 독일인 홈리스 너 이놈 시키, 벼룩 데려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