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 년

by 헤나따

2017. 07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어?"라는 질문에 "일 년쯤 됐어."라고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일 년. 드라마에서 마지막 회에 주인공들이 엇갈렸다가 검은 장면 한번 지나가고 자막으로 '일 년 후' 세 글자면 유학 갔던 여자 주인공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남자 주인공과 극적으로 재회하고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하는 마법의 세 글자, 일 년 후.




그 일 년을 다시 톺아보자니 숨이 막혀온다. 유학 첫 해. 힘들 거라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각오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돌아보면 어느 정도 미화되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겠지 했는데 아직 미화가 되려면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할 듯하다. 거의 정년에 가까우신 한 선생님께서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시기를 박사과정 유학생활로 꼽으시기도 했으니, 아마 이때의 기억이 미화될 그 '나중'은 정말 나중. 삶의 끝자락일지도?



무엇이 나를 그리 힘들게, 다시 돌아보기조차 어렵게 만들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여행가보고 싶어 하는 멋진 나라에 살면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을 한다. 실컷 읽고 실컷 쓰고 틈틈이 산책도 하며. 모든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그런데 왜?



어쩌면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특유의 우울감일지도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가 그러했듯, 베르나르두 수아레스가 그러했듯, 전혜린이 그러했듯. 그런데 애초에 나는 우울감만 있는 사람이 아니다. 흥도 많고 까불기도 잘 까불고. 물론 내게도 밝은 면, 어두운 면 다 있지만 이렇게 어두운 면이 점점 커지는 걸 보는 게 씁쓸하다. 자꾸 예민해지고 까칠해진다.



9월. L시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차근차근히 기억을 복기하며 추억을 회상해보려 한다. 첫날의 기억은 매우 좋았다. 거짓말처럼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아줄레주 가득한 예스런 거리의 건물들. 그러나 동시에 떠오르는 공항에서 탄 그 택시!!! 혼자 세상 친절한 척 다 해놓고 세배나 높게 가격을 받았던 바가지 택시운전사. 그러나 택시 바가지는 애교 중에 애교였다는 것을 그땐 막 도착한 새로운 도시의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알지 못했다. 학교 개강도 하기 전부터 엄청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맨 처음 개인 블로그에 유학 1주년을 맞이해서 지난 일 년간의 유학생활을 돌아보려고 2017년에 쓰여진 글입니다. 지금(2019)년에 브런치에 다시 옮겨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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