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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zy canvas Sep 27. 2020

세상에 쓸모없는 풀은 없다

잡초는 더 이상 잡초가 아니다.

텃밭을 하다 보면 가장 힘든 게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아마 거의 대부분 '잡초 제거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봄에 한껏 부푼 마음으로 씨앗을 뿌리지만 어떻게 봄을 알았는지 내가 뿌리지도 않은 씨앗들이 먼저 나와 자리를 차지한다. 여름에는 그 풀들과 한껏 씨름도 해야 한다. 뽑아도 뽑아도, 비 한번 오고 나면 언제 뽑혔었냐는 듯이 키가 쑥 자라 있는 풀들. 심은 작물들이 그렇게만 자라줘도 소원이 없겠다.

흔히 잡초라고 불리는, 내가 심지 않은 풀들은 과연 텃밭에서 하등의 쓸모없는 존재일까? 사실 자연이 일하는 생태텃밭에서 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이름 모를 풀도, 벌레도, 모두 텃밭 생태계에 존재하며 자신의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모두가 제 역할을 하나씩 하면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텃밭에서 뽑히는 식물 1순위인 쇠뜨기 역시 텃밭에서 사람의 수고를 덜어준다. 쇠뜨기는 뿌리를 뻗으면서 흙을 부시는(가는) 역할을 한다. 쇠뜨기가 시든 자리의 흙은 매우 부드럽다. 또한 쇠뜨기의 잎은 알칼리성을 띄기 때문에 쇠뜨기가 분해되면서 흙을 약알칼리성 토양으로 바꾼다. 요즘같이 산성비가 심한 시대에 쇠뜨기는 그야말로 천연 중화제인 것이다.

척박한 흙에서 자라는 바랭이. 바랭이는 메마른 땅에 영양소를 공급해준다. 광합성을 하면서 생산한 탄소 화합물 과당을 토양 속에 있는 미생물과 벌레에게 공급해 주며 시든 후에는 흙속에서 분해되어 질소, 칼륨, 인 등으로 토양에 환원한다.

화이트클로버나 크림슨 클로버도 마찬가지이다. 흙을 덮으면서 자라기 때문에 피복식물로 안성맞춤이다. 흙을 피복하면 토양의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 흙이 딱딱해지지 않고 촉촉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또한 클로버류는 콩과 식물이기 때문에 식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질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또 이 많은 풀들이 꽃을 피우면 텃밭에 다양한 곤충들이 찾아온다. 어떤 곤충은 수정을 하고 어떤 곤충은 해충은 잡아먹는다. (벌레 중에서 해충은 10%로 안된다고 한다)

텃밭에 생태계가 풍부해지면 그만큼 사람이 할 일이 줄어든다. 부족한 영양소를 공급하기 위해 퇴비를 넣을 필요가 없으며 잡초를 뽑기 위해 노동력을 들이 필요도 없다. 다양한 곤충들이 수분을 돕기 때문에 열매도 훨씬 잘 달린다. 썩어서 토양에 환원된 다양한 식물은 토양에 미생물을 활발히 움직이게 하며 다양한 영양소를 토양에 공급한다.

숲을 한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 방대한 곳에 누군가가 일부로 퇴비를 넣지 않는데도 숲의 흙은 건강하고 향기가 난다. 숲 바닥에 낙엽이 그대로 쌓이고 숲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들도 자신의 계절에 맞게 태어났다가 다시 토양으로 환원된다. 우리가 가꾸는 작은 텃밭도 이렇게 숲처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주 아주 작지만 숲처럼 자연이 일하는 텃밭 말이다.

나도 세 걸음 남짓의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지만 잡초를 일부러 뽑지 않는다. 다만 키가 어느 정도 커 졌을 때 베어내어 그 자리에 덮어둔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풀 싹이 자라는 것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고 흙을 피복하여 토양이 건조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잘라낸 풀들이 그대로 토양으로 환원되어 내가 심은 작물들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잡초 때문에 작물들의 성장이 더뎌진다거나 해충의 피해가 있다거나 하진 않았다. 아직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더 다양한 방법을 써 볼 테지만 텃밭에 다양한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꽤 재미있고 또 생각보다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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