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봄을 전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찬 공기 사이로 봄냄새가 났다. 내가 사랑하는 봄이었다.
3주마다 병원 진료를 보았다. 자궁경부가 짧아지지 않았는지, 아이는 잘 크고 있는지, 불편한 곳은 없는지 확인을 받았다. 교수님은 눕눕만 하는 나에게 하루종일 누워있는 것은 오히려 안 좋다며 가벼운 산책과 집안일을 하라고 하셨다.
산책은 혈액순환에 아주 좋아요!
임산부는 맑은 공기를 많이 마셔야 해요!
교수님의 조언과 봄 냄새에 용기가 생겨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아가. 엄마랑 신발 신고 모자 쓰고 밖으로 나가자. 우리 같이 산책하자.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제일 작은 원을 그리며
딱 5분만 산책을 하기로 했다.
병원을 위한 외출이 아니라 산책을 위한 외출이라니! 두려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밖으로 한걸음을 내디뎠다. 공동 현관이 열리며 밀려오는 바깥공기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청량했다. 두 팔을 벌리고 가슴을 활짝 열어 맑은 공기를 코로 들이마셨다. 폐로 깨끗하고 맑은 공기가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이 공기가 내 폐를 통과해 온몸을 돌아 자궁으로, 그리고 그 안에 생명, 나의 작은 아기에게 닿는 상상을 했다. 아가 맑은 공기 많이 마셔요.
이상하게도 20주까지 아기의 태명을 소리 내 부르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다 우연히 인스타에서 어떤 영상을 봤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에게 태명을 부르니 아기가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아... 우리 아기도 태명을 기억해야 할 텐데...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똥깡이를 불러야겠구나! 너의 이름을 부르며 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꽃 색깔이 어떤지, 나무의 새순이 얼마나 돋아났는지 다 설명해 줘야지.
고작 5분 동안 둘러볼 수 있는 화단이지만 봄이 가득했다.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있었다. 여린 잎이 나무 가지를 뚫고 올라오는 연둣빛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가! 이른 꽃을 피워낸 꽃나무의 향은 얼마나 달콤하고 그 빛깔은 얼마나 빛나는가! 이 봄 안에 아이를 밴 내가 있다. 조금씩 태동을 느끼게 해주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하는 봄날의 산책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매번 같은 곳을 5분씩 걸었지만 매일 조금씩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어떤 나무는 어제보다 새순을 더 많이 피웠고 어떤 나무는 드디어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아기와 나는 산책 코스 제일 처음에 있는 나무부터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며 산책을 했다.
똥깡아.
어제 봤던 꽃봉오리에서 꽃이 피었네.
어제는 한송이만 피었었는데
오늘은 세 송이가 더 피었구나.
이 나무는 자두 나무란다. 여름이면 열매를 맺는다네.
너도 느껴지지?
아이와 함께 봄이 오는 걸 눈과 귀와 코로 느끼는 시간. 내가 보는 이 꽃이 내 눈을 지나 마음을 지나 아기에게 전해지기를. 새순의 아름다운 연두색이 아기에게 전해지기를. 내가 맡은 봄냄새가 탯줄을 통해 아기에게 닿기를. 내가 행복하니 너도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 강해지면서 5분의 산책은 점점 욕심을 내며 8분, 10분, 12분으로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걱정이 많은 남편은 딱 5분만 걸으라 했지만 몰래몰래 조금씩 더 걸었다.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이상하게 아기와 내 몸에 자신감이 생겼다. 갑자기 자궁이 쏟아지는 상상 대신 자궁경부가 꽉 묶여 있는 상상을 계속하게 됐다.
아파트 화단 작은 원을 그리며 돌아보는 세상이 내가 볼 수 있는 봄의 전부였지만 똥깡이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고 함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새순을 만져보고 라일락 꽃 향기를 맡았다.
산책을 하면 엄마 마음이 특히 더 행복했다는 걸
똥깡이는 분명 느꼈을 것이다.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유모차에 널 태우고 이 길을 걸어야지. 조금 더 자라면 아기띠에 너를 안고 걸어봐야지. 아장아장 걷는 너의 손을 잡고 이 길을 기억하냐고 물어봐야겠다. 당연히 모른다고 답하는 너에게 연둣빛 새순과 꽃봉오리를 알려주며 그때처럼 다시 또 봄이 왔다고 이야기해야지.
유독 눈이 부신 봄이었다. 작은 새순도, 꽃봉오리도, 땅을 뚫고 나오는 잡초까지 모든 것이 특별하고 감사했다. 어쩌면 할머니가 되어 내 젊은 날을 떠올렸을 때 눈물 날 만큼 돌아가고 싶은 시간일지도 모르는, 눈이 부신 봄날이었다.